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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기사 한 꼭지, 세계 와인산업 판을 바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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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27면

와글와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은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한 사건을 다룬 그림이다. 파리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며 산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두고 간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그 판정을 파리스에게 맡기게 된다. 각각 권력, 지혜, 미인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파리스는 미의 여신이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주겠다’고 제안한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그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였던 헬레네를 얻게 되고 이로 인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앙심을 품은 나머지 두 여신인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편을 들게 된다는 줄거리다.

미국 독립 200주년 마케팅에 활용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사진 위키피디아]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사진 위키피디아]

그리스 신화의 주제를 와인에 접목시켜 기사를 씀으로써 와인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람이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파리 특파원이었던 미국인 조지 테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때 2000만 명의 독자층을 자랑했으며 한국에서도 타임 강독이 유행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1976년 6월 7일 발간된 잡지에서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다. 그렇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던 에피소드이며, 와인 종주국을 자처하던 프랑스가 신흥국 미국에 패배를 당한 굴욕적인 사건을 말한다.

파리에서 와인숍과 와인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피리어와 미국인 패르리샤 갤러허는 선입관과 편견 없는 와인 평가 이벤트를 기획하고 1976년 5월 24일 파리의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행사를 개최한다. 초청된 9명의 심사위원은 모두 프랑스에서 저명한 와인 전문가들이었으며, 프랑스와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 테스트하게 된다. 레드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품종이 대상이었다. 보르도에서는 샤토 오 브리옹, 샤토 무통 로칠드 등 정상급 레드와인, 부르고뉴에서는 퓔리니 몽라쉐, 뫼르소 샤름 룰로 등 역시 고급 화이트와인이 엄선됐다. 당연히 프랑스산 와인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당연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레드와인에서는 스택스립, 화이트와인에서는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역사적 와인들은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당시 사용됐던 와인 잔과 함께 전시돼 있다. 주최자와 와이너리로부터 기증받았다.

화이트와인 부문에서 우승한 1973년 샤토 몬텔레나. [사진 위키피디아]

화이트와인 부문에서 우승한 1973년 샤토 몬텔레나. [사진 위키피디아]

세계 와인 업계의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다준 사건이지만 잡지에서 기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표지 기사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시험 부정 스캔들에 관한 것이었고, 모던리빙 섹션에는 메인 아이템은 ‘애틀랜타의 테마파크’ 기사였으며 밑의 귀퉁이에 사진도 없이 불과 4단락으로 되어 있는 2000자 짧은 글이 실린다. 그 제목이 ‘파리의 심판’이었다. 짧지만, 와인 역사상 가장 장기간 영향력을 발휘한 와인 기사였다. 이 글이 아니었다면 와인업계 사람들만의 이벤트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소지가 컸다.

“만약 현장에 타임지에서 나온 기자가 없었다면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행사를 기획한 스피리어의 회고담이다. 기사를 쓴 조지 테버는 브뤼셀과 독일, 스위스에서 근무해 포도주를 좋아하고 와인 문화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전문가라고 주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더욱 이전까지 와인에 관해 한 번도 기사를 써본 적이 없었다. 이 행사가 열렸을 때 주최 측에서는 언론사들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특파원 대부분 외면했다고 한다.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사실 해외 특파원들은 혼자서 주재국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뤄야 하기에 시간의 여유가 없는 편이다. 와인행사는 사소한 것으로 비춰질 소지도 충분했다.

‘파리의 심판’을 다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사. [사진 타임지]

‘파리의 심판’을 다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사. [사진 타임지]

하지만 ‘빨간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생산자로서 와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안다.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와인에 대한 열정만으로 현장 방문의 가치는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장을 지켜본 유일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와인 테스트가 이뤄지는 행사장 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며 휴대용 ‘갈색 노트’에 심사위원들이 하는 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와인 리스트와 비교해 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최고급 와인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프랑스산 와인을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감정했고, 그 반대로 하기도 했다.” 뛰어난 프랑스어 실력이 없었다면 감지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팩트 기반 취재의 중요성이다.

고대 그리스의 ‘파리스의 심판’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면, 1976년에 있었던 ‘파리의 심판’은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와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전문기자였던 뉴욕타임스의 프랭크 프라이얼이 두 개의 칼럼을 게재함으로써 국제적인 이슈가 된다.

조지 테버, 와인 관련 사업자로 성공

와인 종주국을 자처하였던 프랑스인들은 격분했다. 프랑스로서는 1000년 이상 권위가 하루아침에 손상되는 굴욕스러운 일이며 테루아 즉, 프랑스의 토양과 기후에서 자란 포도가 최고라는 신화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반면에 미국 와인 업계로서는 1976년이 미국 독립 200주년이었기에 절묘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파리의 심판’이 와인산업만 바꿔놓은 것은 아니었다. 조지 테버는 와인 시음회와 와인 역사를 분석한 『파리의 심판』이라는 책을 내기에 이른다. 글은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그 글을 쓴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타임의 영향력은 날로 쇠퇴해갔지만, 그는 와인과 비즈니스를 결합한 전문지를 만들고 성공한 사업자로 변신한다. 벌써 46년이 흘렀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파리의 심판을 말한다. 와인과 글이 만나서 세상을 바꿔놓은 ‘와글와글’ 사건이었다. 세월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파괴력을 이겨내고 여전히 그의 글이 읽히고 있으니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진정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 를 지냈으며,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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