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멈추고 전쟁은 승리…냅스터 이후 20여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5.21 00:21

업데이트 2022.05.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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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20면

타잔 경제학

타잔 경제학

타잔 경제학
윌 페이지 지음
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요즘 디지털 음악 시장을 보고 있으면,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속담이 떠오를 법하다. 일찍이 1999년 냅스터의 등장과 함께 음악 산업은 디지털 신기술로 인한 파괴적 변화를 가혹하게 겪었다. 당시는 음악을 즐기려면 CD를 사는 게 당연하던 때. 그런데 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음악을 공짜로 주고받는 길이 열렸으니 기존 산업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고도 남았다.

음반 업계는 냅스터와 여러 유사 서비스들, 그리고 그 이용자들까지 상대로 소송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런 ‘두더지 잡기’는 대중의 반감만 샀을 뿐. 음반 판매는 급감했고, 관련 업체의 파산이 줄을 이었다. 여기까지는 반면교사 같다. 한데 20여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음악 산업은 다시 새로운 성장기를 누리고 있다.

이를 이 책은 처음 10년간 불법 다운로드 근절 등을 외치며 기존 시장을 지키는 데 매달렸던 음악 업계가 이후 10년 동안 스트리밍 서비스 등 디지털 변화에 올라탄 결과로 본다. 저자는 세계적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의 수석경제학자 출신. 그는 “음악 산업은 싸움을 멈추고 나서 비로소 전쟁에 승리했다”고 썼다.

음악 산업은 디지털 격변 이후 다시 성장기에 들어섰다. 사진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올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종 무대. [EPA=연합뉴스]

음악 산업은 디지털 격변 이후 다시 성장기에 들어섰다. 사진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올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종 무대. [EPA=연합뉴스]

이 책은 음악 산업의 경험을 토대로 디지털 시대의 파괴적 혁신이나 변화(저자는 ‘냅스터 순간’이라고 부른다)를 앞둔 이들이 검토할 만한 여러 생각 거리를 짚는다. 제목에 나오는 ‘타잔’ 경제학은 낡은 아이디어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옮겨 탄다는 비유. 출처는 기술 전문가 짐 그리핀의 2009년 연설인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글 속의 덩굴줄기에 매달려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다음 줄기를 향해 손을 뻗는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언제 낡은 줄기를 놓고 새 줄기를 붙잡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미리 밝히자면 누구나 궁금할 그 ‘타이밍’에 대한 정답이 책에 나오진 않는다. 대신 ‘주의력 경제학’을 비롯해 ‘그루초 마르크스주의’ ‘비공유지의 비극’ 등 음악 산업이 겪은 디지털 경제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흥미를 끈다. 주인 없는 땅이 황폐해지는 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라면, 비공유지의 비극은 주인이 너무 많아 자원이 과소 이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라인강은 중세 유럽의 주요 무역로였지만 이후 귀족들이 저마다 장악한 짧은 구간마다 통행료를 징수하자 이용이 급감했다. 반면 구독료 기반의 음악 스트리밍 업체는 뷔페식 상차림을 위해 수많은 창작자들과 개별 계약을 맺는 대신에 저작권협회 등을 통한 포괄적 라이선스 방식으로 이를 피해갔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이용자를 유인하는 역할이 큰 창작자일수록 이 포괄적 공동체를 이탈하려는 인센티브가 강하다는 점이다. 그루초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설명하는 개념. 할리우드의 유명 희극배우 그루초 마르크스가 “나는 나의 가입을 허용하는 클럽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한 말에 착안했다. 저자는 포괄적 공동체 방식이 지속하려면 개별적인 거래 비용을 줄여 공동체가 실현하는 가치가 창작자가 개별 활동에서 얻는 최대 가치보다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롱테일의 법칙’처럼 그간 디지털 경제에서 강조된 부분의 다른 면을 짚는 대목도 흥미롭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타워레코드가 매장에 보유했던 앨범은 4만 종. 이것도 엄청난 규모이지만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6천만곡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한데 이용자들의 스트리밍 수요는 상위 4만 종의 앨범에서 90% 안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음악 구색이 막대한 규모로 늘어났지만 롱테일의 법칙이 그 규모에 고스란히 비례해 들어맞는 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거노믹스’라는 개념을 통해 다양성의 효용을 강조한다. 일반 식당의 비건 메뉴에서 큰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메뉴의 존재가 채식주의자를 동반한 이용자를 유인하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또 각종 통계나 빅데이터에 대한 의존도 경계한다. 스포티파이의 새로운 플레이리스트가 성공한 이유를 분석하며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 즉 기존 플레이리스트와 달리 월요일에 론칭했다는 것을 간과했던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이기도 하다.

스포티파이의 모국 스웨덴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영국 출신인 저자는 스웨덴이 진작부터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한 나라, 신기술 수용이 빠른 나라인 동시에 사회 안전망이 탄탄한 나라라는 것을 주목한다. 저자는 자유 시장 경제학의 통념과 달리 이런 안전망이 더 많은 모험적 시도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에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뉴스의 유료 서비스도 여러 신문사를 아우르는 포괄적 공동체 방식을 시도할 것을 제안하거나, 지금의 빅테크 독점 기업을 과거의 독점과 다른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책의 부제는 ‘변화와 생존을 위한 8가지 경제 원칙’. 금과옥조로 추앙할 보편적 원칙을 정립했다기보다는 파괴적 변화를 헤쳐온 음악 산업의 경험 자체에서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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