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맞은 한국경제]“복합위기 출구는 성장률 회복뿐, 앞으로 5년 마지막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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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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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경제를 둘러싼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성장률을 돌려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빈 기자

김세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경제를 둘러싼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성장률을 돌려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빈 기자

“한국경제가 직면한 복합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성장률의 근본적 회복 뿐이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장기성장률을 돌려세우는 것이 새 정부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기 성장률은 특정 연도의 전후 5년간 성장률의 평균값으로, 단기적 요인에 영향 받지 않는 ‘진짜성장능력’을 나타낸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통화기금(IMF) 조사국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거시경제 전문가다. 1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복합위기에 둘러싸인 한국 경제의 활로에 대해 물었다.

“새 정부 0% 장기성장률 맞닥뜨릴 수도”  

경제성장률 회복을 지목한 이유는.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강조했던 내용이다. 2016년에 썼던 논문에서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6%대였던 장기성장률이 이제는 1~2%대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새 정부에서 0%대 장기성장률에 맞닥뜨릴 수 있다. 변화가 없으면 2년에 한 번꼴로 역성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앞으로 5년이라고 본다.”
장기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선진국과 기술 차이가 20년 이내로 좁혀진 탓이다. 1980년대까지는 모방형 교육을 통해 익힌 선진지식으로 모방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며 모방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기술 차이가 20년 이내로 좁혀졌다. 이 순간부턴 모방 제품이 먹히지 않는다. 선진국들이 핵심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는 기간이 20년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만드는 창조형 인적자원을 육성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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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앞서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데.
“지금 한국경제는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옥죄어 오는 복합위기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고 가계 부채의 급증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집값, 전셋값 급등에 이어 물가불안도 심화하고 있다. 기업은 생산성 둔화와 공급망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가 다양하니 하나에 대응하면 곧바로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 예컨대 경기 침체가 우려될 때마다 재정 확장과 저금리 정책으로 대처하곤 했다. 그 결과 정부부채와 가계부채가 누적돼 정부 운신의 폭을 좁혔고, 부동산 가격과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장기성장률을 높이는 것인데 단기성장률을 반짝 올리는 일시적 처방만 반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제로 성장시대에 진입하면 대응이 어려운 탓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목한 것이다.”
다른 문제도 경제성장이 해법인가.
“중앙SUNDAY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복합위기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요인으로 학계와 재계는 금리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를 꼽았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862조에 이른다. 여기에 전세 보증금 등 개인 간 대출을 포함하면 271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가 오르면 폭탄이 터질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다. 당장 위기를 막고자 정부가 저리로 돈을 빌려주거나 상환을 유예해주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위기를 뒤로 미루기만 하는 것이다. 미루기만 해선 언젠간 터질 수밖에 없다. 지금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기엔 인플레이션도 무섭다. 한·미 금리 역전으로 자본 유출 우려도 있다.”
성장률을 높이면 달라지나.
“모든 부채는 미래 발생할 소득을 미리 당겨서 쓰는 것이다. 앞으로 소득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미래에 갚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가계 소득이 빠르게 성장해준다면 가계부채가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려면 일부 고소득층이 아니라 가계 전반에 소득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장기에 걸쳐 성장률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성장하더라도 ‘분배 문제’가 남는다.
“성장과 분배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한국은 경제 성장률이 지속 하락하는 과정에서 분배지수들도 계속 악화됐다. 성장과 분배가 따로 움직인 게 아니라 동시에 악화됐단 얘기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한 때문일 수 있다. 근로소득의 증가가 분배 측면에서 중요하단 얘기다. 특히 근로자들의 인적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정책은 경제성장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증가시켜 분배도 개선한다.”

창의적 기업가 나오는 환경 만들어야

선진국은 특성상 성장이 둔하다.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다. 한때 빠르게 성장하다가 장기성장률이 0%대 이하로 하락한 나라가 여럿 있지만 하락 없이 성장을 지속한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150년 간 성장둔화 없이 지속적 성장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미국에선 과거 토머스 에디슨과 헨리 포드를 비롯해 21세기에는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까지 혁신적인 기업가가 계속해서 나왔다. 이런 기업은 공급망 문제에서도 우위에 있다. 전 세계가 원자재난을 겪고 있지만 애플이나 테슬라는 반도체나 배터리 공급업체의 최우선 고객이다. 한국도 창의적인 기업가가 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단 얘기다.”
창의적 인재가 나오려면.
“단순히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식으론 안 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 규모는 이스라엘과 세계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하락세인 장기 성장률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단순히 돈만 집어넣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원해야 한다. 예컨대 창의적 아이디어의 재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세금을 낮춰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 누구나 갖고 태어난 창의적 잠재력을 끄집어내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 경쟁촉진 정책도 필요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나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과실을 얻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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