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맞은 한국경제]가계부채 1862조, 임계수준 넘어 소비·성장 갉아먹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2.05.21 00:20

업데이트 2022.05.2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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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08면

SPECIAL REPORT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 급등하자 무주택자들이 빚을 내서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20~30대 MZ세대가 빚을 많이 졌다. [뉴스1]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 급등하자 무주택자들이 빚을 내서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20~30대 MZ세대가 빚을 많이 졌다. [뉴스1]

1862조원.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엄청난 금액인데, 이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총 가계부채 규모다. 총액 자체도 문제지만, 2년 전인 2020년 5월에 비하면 260조원가량 급등했다. 정부가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가계부채는 올 들어 조금씩 줄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은 1060조2000억원으로 한 달 사이 1조2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간 매달 소폭 줄어들다가 다시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 보험사 등의 대출을 더하면 1800조원대라는 숫자가 나온다.

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잘 갚을 수만 있다면 규모가 얼마가 되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출이 버는 돈에 비해 너무 많다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를 특정할 수 있는 지표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규모인데,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는 106.1%에 이른다. 1년 전에 비해 2.78%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하는 가계부채 비율 임계수준(80%)을 크게 웃돈다. 가계부채가 임계수준을 넘어서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와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이 ‘복합위기 요인 중 가장 우려되는 것’으로 ‘금리 상승과 가계부채’(65.2%)를 첫 손에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상경계 교수 50% “가계대출 탓 위기 우려”

실제로 빚이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면서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은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73.4%로 전년보다 4.3%포인트 상승했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금리가 상승하면 빚을 못 갚는 채무불이행 가구가 증가하고, 이게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수도권 대학 상경계열 교수 1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50%가 ‘가계대출 부실화로 인한 금융발(發) 경제위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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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한 건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돈 풀기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영향이 크다. 총 가계부채 중 53% 정도인 982조4000억원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인데, 문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하자 무주택자가 대출을 통해 대거 내 집 마련에 나선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로 집을 사면서 젊은층의 부채가 확 늘어났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20대와 30대의 주담대 증가율은 각각 12.2%, 5.6%로 40대(3.2%)·50대(0.1%)보다 크게 앞질렀다. 2021년에도 20대와 30대의 주담대는 각각 15.8%, 8.9% 증가했다. 그해 40대와 50대의 증가율은 각각 4.6%, 2.2%였다. 그 결과 지금의 MZ세대는 역사상 빚이 가장 많은 젊은층이 됐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의 급성장, 코로나19 이후 주식 시장 활황세도 가계부채를 늘리는 기폭제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암호화폐·주식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연령대에서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가 성행했다. 자영업자의 ‘생계형 대출’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해 장사를 못한 자영업자에 대해 정부가 보상해 줬지만 우리는 사실상 보상해 준 게 없다”며 “그러다 보니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식으로 가계부채 조이기에 나서면서 가계부채가 조금은 감소했지만, 문제는 감소 속도에 비해 대출 금리가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높이는 ‘빅스텝’을 밟으면서 한국은행도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0.25%포인트씩 최소 세 차례 이상 추가 인상해 기준금리를 2.25~2.50%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남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주인 26일과 7·8·10·11월 다섯 번이다.

MZ세대 사상 최대 부채에 짖눌려  

기준금리가 2%를 돌파하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3년 만에 연 7%대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고정형 주담대금리는 4.020∼6.590%로 이미 7%에 근접해 있다. 지난해 말(3.600∼4.978%)과 비교해 5개월여 만에 상단이 1.612%포인트 상승했다. 주담대 고정금리의 지표로 주로 사용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가 2.259%에서 3.618%로 1.359%포인트 치솟았기 때문이다. 최근 은행채를 포함한 채권시장 금리는 미국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전망 등이 반영되면서 빠르게 올랐다.

대출금리가 7%에 이르면, 가령 주담대(30년 만기·원리금균등상환방식) 4억원을 4%의 금리로 빌린 차주는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이 266만원으로 지금(191만원)보다 75만원 늘어난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 차주 1인당 연 이자 부담이 16만1000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과 올해 1·4월에 기준금리를 올린 한은이 앞으로 세 차례의 추가 인상을 단행한다고 가정하면 대출자 1인의 이자 부담은 1년6개월 사이 112만7000원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이를 가계부채 총액 1862조원과 변동금리 비중(76.1%)을 고려해 따져보면 대출자들은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연말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23조3828억원에 이른다.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한국경영학회장)는 “한국과 미국의 긴축정책으로 국내에서 금리상승이 이어지면 가계부채와 소상공인 부채 문제가 매우 큰 경제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이 적절히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10월 저금리 대환 대출 시행…대출 규제 완화 속도조절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이 같은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당선인 시절 폭 넓은 대출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대출 규제 완화 정책에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무작정 대출 규제를 풀기보다는 젊은층·소상공인 대출 등 맞춤형 대출 정책으로 대출 규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계부채를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7월로 예정된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40%) 조치는 그대로 시행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상태에서 DSR까지 풀어 버리면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DSR을 시행하면 소득이 많지 않은 젊은층이나 코로나19로 소득이 확 준 자영업자는 금융기관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젊은층의 경우 미래소득을 반영해 DSR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금융권 대출 원리금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10월부터 ‘저금리 대환 대출’을 도입할 방침이다.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은행권이나 제2금융권으로 대환하는 방식으로, 금리는 최대 연 7% 수준으로 잠정 결정됐다. 공급 규모는 7조5000억원이다. 이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금리 대출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가계부채 대책에 동의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의 절반은 사실상 부동산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며 “주택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공급을 늘리는 것이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금리 대환 대출이 미봉책이 되지 않도록 일종의 플랫폼을 만들고 금융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금융기관 간 경쟁성을 높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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