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털 난 물고기, 기괴한 데서 아름다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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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드랙퀸 아티스트 모지민

최근 에세이집을 낸 드랙퀸 아티스트 모지민. 6월 23일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도 개봉한다. 전민규 기자

최근 에세이집을 낸 드랙퀸 아티스트 모지민. 6월 23일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도 개봉한다. 전민규 기자

2020년 초, 제3의 성을 소재 삼은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이라는 연극을 보며 희한한 경험을 했다. 배우 이상이가 연기한 평범한 남자가 생계를 위해 드랙퀸(남성이 과장된 여성 이미지로 꾸미는 퍼포먼스) 업계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극중 다정한 언니같은 게이 캐릭터에 반해 ‘나도 게이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몇 년 새 각종 문화 콘텐트에서 ‘그들’이 적극 다뤄지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위화감이 아니라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는 걸 깨닫고, 젠더리스 트렌드를 다룬 기사까지 썼다.

털 난 물고기 모어

털 난 물고기 모어

그로부터 2년여. 드랙퀸 아티스트 모지민(44)의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사진)를 만났다. ‘제3의 성’으로서 버텨 온 삶의 애환과, 이미 달관한 듯한 인생에 대한 관조가 구구절절하다. 모지민은 한예종 출신 무용가로, 2019년 스톤월 항쟁(1969년 뉴욕에서 동성애자 집단이 경찰의 현장 급습에 저항한 데모) 5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서 뮤지컬 ‘13 Fruitcakes’를 공연하고, 뮤지컬 ‘헤드윅’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 투어에도 동행한 ‘성공한 드랙퀸’이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곧 개봉한다는데, 클래식 발레를 전공해선지 ‘백조의 호수’ 흑조 분장을 한 사진이 유독 강렬하다.

에세이집 내고 다큐 영화도 곧 개봉

튀튀를 입고 발끝으로 서있지만, 오데트와 똑닮아 지그프리트 왕자를 현혹시킨 오딜이 아니라 차라리 로트바르트를 닮은 박력있는 외모가 사실 좀 헷갈렸다. 전화로 촬영 콘셉트를 의논하다 무심코 “평상시엔 남자 모습으로 다니시나요”라고 물으니 “되도 않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젠더를 이분법으로 나누던 시대가 지났다’는 기사를 써놓고도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사고의 틀에 갇혀있다니, ‘제3의 성’을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다 싶다. 하긴, ‘털 난 물고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설프게 아는 척 할 것 없이 그냥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2019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나선 모습. [사진 이강혁]

2019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나선 모습. [사진 이강혁]

하리수처럼 여자로 보이는 사람과 모지민은 정체성이 다른가요.
“저도 정체성은 트랜스젠더예요. 하리수는 생물학적으로 성전환을 택했고, 저는 수술을 하지 않은 삶을 선택한 거죠. 몸도 내면도 여자로 사는 하리수와 달리 저는 남성의 몸으로 살 뿐, 정체성은 같아요.”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네요.
“지금은 세상이 좋아지고 트랜스젠더들이 여러 직업이 있지만, 제가 수술을 고민했을 땐 음지에서 매춘을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수술을 받아 여자가 되고도 그렇게 살더군요. 그럴 바에 차라리 죽겠다고 포기를 하고 방황할 때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사랑으로 저의 아픔이 다 승화됐어요. 그때부터 여자도 남자도 아닌 한 인간으로 살기로 했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지인 얘기도 많던데.
“학폭 때문에 죽는 거랑 같아요. 사람들은 좀 다른 사람을 공격하잖아요. 시골에 살 때는 서울사람들은 세련되어서 받아주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세상은 지옥이구나, 나같은 외계인은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전남 무안에서 농사지으면서도 저를 인정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살 수 있었죠.”
최후의 생계수단으로 드랙퀸을 택했는데, 무용계에 남을 순 없었나요.
“발레 안에서도 남자는 왕자가 돼야 하는데, 드랙퀸 쇼는 힐 신고 가발쓰고 화장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호모새끼라고 놀리고 저에게 폭력을 행했다면, 그쪽에서는 아무도 저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니 신이 난 거죠.”
드랙퀸의 양식화된 화장법이 아름다워 보이진 않아요.
“여성의 페르소나를 놓고 최대한 과장된 치장을 하는 것이죠. 알렉산더 맥퀸도 패션쇼를 할 때 항상 기괴하고 기이한데서 아름다움을 찾았잖아요. 일반인에게 무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아름다워요. 어떻게 하면 더 과장되게 할까 고민하죠. 사람들이 저로 인해 놀라고 충격받는 걸 보면 통쾌하거든요.”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 ‘13 fruitcakes’ 중 차이콥스키 씬에서 흑조로 분장한 모습. [사진 모지웅]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 ‘13 fruitcakes’ 중 차이콥스키 씬에서 흑조로 분장한 모습. [사진 모지웅]

요즘엔 제3의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죠.
“책 나온걸 아파트 주민 단톡방에 올렸더니, 이웃 아주머니들이 저희 집에 사인받으러 오셨어요.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언니라고 부르라면서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요. 최근에 찍은 커플 화보엔 6쌍의 부부 중 퀴어가 4쌍이었어요. 퀴어 커플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을 깨려는 기획이라더군요. 이제 세상이 확 열린 것 같아요. 20년 전에는 길에서 게이들끼리도 서로 아는 체 안했거든요. 물론 지금도 제 기사에 혐오성 악플이 많이 달리긴 해요.”
문화콘텐트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얼마 전 디올 패션쇼도 애프터파티를 이태원 클럽 ‘트랜스’에서 했잖아요. 특히 유튜브 영향이 크죠. 드랙, 게이 콘텐트가 많거든요. 나나영롱킴 같은 친구는 팔로워도 몇십만이죠. 몇 년 전에는 모든 방송, 화보, 공연이 저희를 섭외하려고 했어요. 저도 2020년 드랙퀸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솔로 퍼포먼스를 했는데, ‘국립’이라는 보수적인 곳에서 나름 시도를 한 것이죠. 책을 낼 때 출판사도 저같은 ‘듣보잡’이 온갖 신조어를 남발하는 걸 다 허용해 줬고요.”

그의 책은 딱 ‘털난 물고기’ 같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부질없게 만드는 글로 빼곡하다. 2017년 결혼한 러시아인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다가 갑자기 다른 남자들과의 사랑을 말하고, 고통을 준 세상에 저주를 퍼붓다가 한없이 아름답게 그리기도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늘어놓길 좋아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해주기를 바란다”는 게 그의 변이다.

20여년 함께 산 남편과 뒤늦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사랑을 기록하기 위함이죠. 우린 애도 없고 당장 내일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20여년 사랑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박제해두자는 생각에 식을 올렸어요. 제 행위가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아시아에서도 대만, 태국 등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는데, 한국은 멀었잖아요.”
다른 남자와의 사랑도 공공연히 기록했는데, ‘폴리아모리’인가요.
“그냥 바람핀 거예요. 제 인생에 3명의 남자가 있어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냥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라 생각하고, 저는 다 말하고 싶어요. 책을 내고 나니 아직 다 솔직하지 못했던데, 더 아픈 비밀들이 많아요.”

절망 속에도 희망·유머·행복이 꿈틀

‘책에도 여기도 저기도 나왔는데 나는 언제나 없더이다/ 네가 언제쯤이면 네 입으로 네가 있다고 말할 계획이더냐/ 이제 더 이상 나는 없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는 법’

그의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535번까지 넘버링된 ‘그런 날도 있는 법’이라는 연작의 410번이다. 시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알쏭달쏭한 말과 글로 뒤덮인 그는 야릇한 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이상하게 빠져드는 추상미술이랄까.

잘 읽히는 책은 아닌데요.
“논리적인 설명 같은 건 재미없잖아요.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돼요. 그 누구도 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그 미스터리함이 제 책이 가진 특별함이라 생각해요. 제가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말을 쓰지 않지만 형식파괴의 미가 있다고 좋아들 하세요. ‘돈 떼먹고 도망간 제작자의 거시기를 잘라서 논두렁에 버리자’ 같은 저주 퍼붓는 글을 가장 통쾌해 하시던데요.(웃음)”
존 카메론 미첼과의 공연은 특별했겠죠.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이라 1년 전에 매진된 공연이었어요. 뉴욕 전체가 무지갯빛으로 물든 어마어마한 축제였는데, 휘트니 휴스턴 같은 전설이 섰던 무대에 닐 패트릭 해리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선 거죠. 내 우상과 같은 분장실을 쓰면서 ‘전라도 촌년이 이게 왠일이야’ 싶었어요. 전세계에서 모인 관객들의 기립박수도 잊을 수 없죠.”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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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성공도 했고 세상도 좋아졌는데, 왜 그의 글에는 쓸쓸함과 울분이 묻어날까. 자칭 “절망과 죽음을 말하는 걸 좋아하는 페시미스트”가 쓴 글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는 건 독자의 몫이다. “‘생각하는 대로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말을 제일 싫어해요. 그런 말 누가 못하나요. 절망적인 이야기 안에서 유머와 행복을 찾는 게 아름답지 않나요. 누군가는 제 글이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하겠지만, 그 안에 분명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거든요. 다음 책에선 더 불우하고 슬프고 비밀같고 치욕적인 이야기를 꺼낼 거예요.”

오늘은 문화 다양성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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