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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 맞은 한국경제]공급망 대란에 물가·금리·환율 뛰고 가계 빚 폭탄…응답자 100% “지금은 복합위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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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06면

SPECIAL REPORT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직후 쇼핑객이 몰린 서울의 한 백화점. [뉴시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직후 쇼핑객이 몰린 서울의 한 백화점. [뉴시스]

지난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연일 ‘경제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물가와 금리,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3고(高)로 인한 ‘복합위기’ 상황이라는 게 정부 진단이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이 강조한 키워드도 ‘경제’(10번)와 ‘위기’(9번)였다.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 15일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우리 경제의 복합위기 징후가 뚜렷하고 특히 물가가 심상찮다”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치솟는 물가 상승이야 국민들도 연일 체감하고 있지만, 정말 대통령과 정부의 진단처럼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걸까.

“지금 국면은 강한 위기 이상” 52.1%

4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원으로 전월보다 1조2000억원이 늘었다. [뉴스1]

4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원으로 전월보다 1조2000억원이 늘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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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9~16일 주요 기업 13곳과 경제·경영학 전공 교수, 경제 관련 전·현직 학회장,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등 50명(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한국경제가 복합위기 국면이라고 동의했다. 전체 설문조사 대상 중 46명(곳)이 응답해 복합위기라는 진단에 37%는 ‘강하게 동의한다’, 17.4%는 ‘매우 강하게 동의한다’고 밝혔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54.4%)가 복합위기임에 강하게 동의한 것이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응답은 28.3%, ‘약간 동의한다’는 17.4%였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다. 응답자들은 이 같은 위기가 절대 가볍지 않다고 진단했다. 13%가 5점 만점에 5점 수준인 ‘상당히 강한 위기’라고 답했고, 39.1%는 4점 수준인 ‘강한 위기’라고 응답했다. 역시 절반 이상(52.1%)이 강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30.4%는 3점 수준의 ‘어느 정도 위기’라고 대답했고, 2점 수준의 ‘약한 위기’라는 응답은 17.4%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복합위기 요인 중 가장 우려되는 것(복수응답)으로 ▶금리 상승과 가계부채(65.2%) ▶글로벌 경기 침체(52.2%) ▶물가 상승(47.8%) ▶공급망 대란(45.7%)을 꼽았다. 금리 상승, 가계부채, 글로벌 경기 침체, 물가까지…. 국내·외 환경 모두가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거나 언제든 옥죌 수 있는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박영렬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미 각종 경제지표는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4월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4.8%로 13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원·달러 환율은 12일 1288.60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12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각각 찍었다. 시중 금리도 연일 뛰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선 가계부채, 대외적으로는 공급망 대란 문제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코로나19 이후 돈 풀기와 주택담보대출 급증 등으로 지난해 말 기준 1862조원을 넘어섰다. 2013년 1000조원에서 약 9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된 것이다. 가계부채가 이렇게 부풀어 오르면 소비가 위축되고, 대출의 부실 위험성이 커지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경제 전문가들은 복합 위기의 1차적 처방으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가 실제로 물가와 가계부채 대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가계부채를 잡는 것이 급선무”라며 “금리 인상으로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40여 년 만의 최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이 과감한 금리 인상에 돌입한 것도 한국경제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될 경우 글로벌 자금이 국내 시장을 이탈해 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과 증시 폭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의 선택지는 기준금리 인상에 머뭇거릴 수 없게 된다.

“미국보다 금리 높게 유지해야” 80.4%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때문에 설문 응답자 중 54.3%는 ‘미국과 박자를 맞추되 금리 인상 속도는 천천히 조절해야 한다’고 답했고, ‘미국과 박자·속도를 맞춰야 한다(현재의 한·미 간 금리 차 0.5%포인트 유지)’는 주장도 26.1%였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미국보다는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0.75~1.00%. 여기에 월가의 예상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최소 두 차례 더 밟을 경우 미국 기준금리는 2.25%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높게 유지하려면 한국은행이 현재 1.5%인 기준금리를 최소한 2.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폭증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기름이 잔뜩 깔린 바닥에 성냥 불을 던지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영섭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세계 각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금리 인상이 가계 빚 상환 부담 가중과 소비 침체 가속화라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가계부채 못지않게 우려한 공급망 대란의 경우 수요가 아닌 공급 쪽에서 비롯됐다는 게 문제다. 공급망 대란이 위협적인 것은 강력한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인 동시에 경기 둔화를 야기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급망 문제는 지정학적 대결 등 국제 정치가 얽혀있어 경제 정책만으로 풀기도 어렵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등 국내에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으로 공급망 대란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복합위기를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어떨까. 응답자 중 76.1%가 ‘상황이 어렵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만큼 어렵진 않다’고 평가했다. 이런 인식엔 외환위기 당시 바닥이 보였던 외환보유액이 4월 말 현재 4493억 달러(약 572조원)나 되고, 대외신인도가 높아진 점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과거보다 튼튼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4월말부터 1260선을 웃돌고 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은 4월말부터 1260선을 웃돌고 있다. [연합뉴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경영학회장)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사전에 예측이 안 된 ‘사건’이었고, 돌발적으로 발생해 대응이 어려웠지만, 지금의 물가·금리·환율 동반 상승은 이미 알려진 ‘구조적’ 위기라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다”고 답했다. 다만 임 교수는 “(정부나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위기 상황이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뇌출혈처럼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할 경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고혈압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동맥 경화가 심각해 언제 혈관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비견되는 셈이다.

응답자 4명 중 1명은 지금의 국면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보다 심각하게 봤다. 19.6%가 ‘금융위기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응답했고, 4.3%는 ‘외환위기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기 충격에선 지금의 위기가 과거보다 덜 심각하겠지만 중·장기적 충격은 더 클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전반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충격의 지속 기간 자체는 길 것으로 예상되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3고라는 거시경제 위기보다 한국의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복합 위기가 더 위협적”이라며 “자칫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에 비해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1.4%,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엔 26.8%였지만 이 숫자는 지난해 말 47%로 대폭 뛴 상태다.

1997년 60조3000억원이던 국가채무 규모는 지난해 말 967조2000억원으로 16배 급증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는 나라 곳간에 여유가 있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취약 계층을 보살피는 소방수 역할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처럼 정부가 적극 재정을 투입해 문제 해결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전영섭 교수는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각해 (위기에 대응해) 재정정책을 적절히 사용할 여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과 언론이 문재인 정부 내내 우려했던 것처럼,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한 결과 정작 위기가 덮쳐오는 상황에서 재정카드를 선뜻 쓰기 어려워진 것이다.

“국가 채무 급증해 재정 투입할 여유 없어”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전문가들 다수는 지금의 고물가와 고환율 추세가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63%)고 내다봤다. ‘내년 이후까지’라는 응답률(19.6%)도 두 번째로 높았다. ‘기약이 어려울 만큼 장기화할 가능성 있다’(4.3%)는 의견도 있었지만, 물가와 환율의 상승세가 상반기 중 꺾일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는 한명도 없었다. 외환위기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선진국들의 협조융자로,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달러를 들여와 비교적 단기간에 불을 끌 수 있었던 반면 가계부채든 공급망 문제든 지금의 위기 요인은 단기 해결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우려했다. 저출산·고령화의 늪에 빠진 데다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 핵심 제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3고라는 거시경제 위기가 자칫 제조업 쇠퇴의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광기 소장은 “제조업을 통한 한국경제의 압축성장 모델은 시효를 다해 고용 없는 성장, 대·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 후발국 추격에 따른 저부가가치화와 생산성 저하 등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하면서 ‘압축적 쇠퇴’ 수순으로 향하고 있다”며 “기성 제조업의 수출을 대체할 새로운 (경쟁국 대비) 비교우위 성장 모델을 찾지 못하는 한 지금의 복합위기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응답해 주신 분(가나다 순)

김상봉 한성대(경제학과) 교수, 김영익 서강대(경제대학원) 교수·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김우찬 고려대(경영대학) 교수, 김정식 연세대(경제학과) 교수,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전 삼성전자 부사장, 박병진 한양대(경영학과) 교수, 박영렬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전 한국경영학회장, 박호정 고려대(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자원경제학회장, 신동엽 연세대(경영학과) 교수, 신재용 서울대(경영학과) 교수, 어윤종 고려대(경제학과) 교수, 유병준 서울대(경영학과) 교수, 이경묵 서울대(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상근 서강대(경영학부·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인실 지속경제사회개발원 이사장·전 서강대 교수, 이종화 고려대(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임채운 서강대(경영학부) 교수, 전영섭 서울대(경제학부) 교수, 전영준 한양대(경제금융학부) 교수·한국재정학회장, 정규철 KDI경제전망실장, 하준경 한양대(경제학부) 교수, 한상만 성균관대(경영대학) 교수·한국경영학회장,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KB·NH투자·대신·메리츠·미래에셋·삼성·한국증권, 신한금융·하나금융투자, 주요 그룹·금융지주 등 기업 13곳 46명(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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