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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칼군무 탓이라고? 그날, 흔들린 디타워의 비밀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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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지난 1월 20일 오후 4시 29분, 서울숲 옆 33층 빌딩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디타워에 큰 흔들림이 감지돼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입주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3차례 바닥이 울렁이는 듯한 진동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가끔 진동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유독 심했다는 목격담도 있었습니다.

지진이었을까요? 하지만 이날 지진은 전혀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빌딩에 설치된 지진감지장치에도 진동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뜬소문도 돌았습니다. 진동 때문에 바닥이 울룩불룩 튀어나오고 천장에서 물이 새고 유리창에 금이 갔다며 “건물의 붕괴 전조 증상이 발생했다”는 거죠. 119 신고를 받은 소방공무원이 출동했고 국토교통부도 긴급 점검에 나섰습니다. 시공사인 DL이앤씨의 주가는 이튿날 7% 내려앉았습니다. 사건 9일 전 광주 화정아이파크가 처참히 무너진 사고가 있어서 입주 직원들의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지난 1월 서울숲 옆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디타워에서 정체모를 진동으로 건물이 수직으로 출렁였다. 사진 DL이앤씨

지난 1월 서울숲 옆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디타워에서 정체모를 진동으로 건물이 수직으로 출렁였다. 사진 DL이앤씨

건물주인 LB자산운용은 한국건축학회에 진동 원인에 대한 조사를 맡겼습니다. 국내 내진 설계와 진동 제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상현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팀을 이끌었죠.

3개월 가까운 조사 끝에 지난 3일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팀은 디타워의 진동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연습생의 춤 연습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발 구름으로 인한 진동이 건물의 ‘고유주파수’와 맞아떨어지면서 ‘공진’ 현상이 일어나 진동이 증폭됐다는 거죠.

빌딩 입주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정체 모를 진동이 아이돌의 춤 연습 때문이라고? 못 믿을 만합니다. 하지만 과학은 충분히 이런 현상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고유주파수와 공진… 무슨 뜻일까

모든 물체는 외부에서 힘을 받으면 진동합니다. 비행기 소음에 유리창이 떨리는 것처럼 말이죠.

눈에 보이는 진동도 있지만, 순식간에 지나가서 알아차리기 힘든 진동도 있습니다. 복싱 경기를 슬로우 모션으로 본 적 있으신가요. 강한 주먹을 맞은 선수의 얼굴은 파문을 그리듯 진동합니다.

빌딩도 충격을 받으면 진동하죠. 건물 내부에서 사람이 걸어 다녀도 건물을 진동시킵니다. 미약해서 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진동을 일으키는 힘이 건물의 ‘고유주파수’와 딱 맞아떨어지면 진동은 점점 커집니다.

고유주파수란 어떤 물체가 힘을 받았을 때 고유의 특성에 의해 얼마나 일정한 간격으로 떨리는지를 보여주는 수입니다. 고유주파수는 자연주파수 혹은 고유진동수라고도 합니다. 주파수라고 하면 보통 전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주파수는 전파든 물체든 특정 시간 동안 얼마나 진동하느냐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단위는 ㎐(헤르츠)를 쓰는데, 1초에 몇 번 진동했느냐를 나타냅니다. FM 라디오에서 보듯 99.9 메가헤르츠란 1초에 9990만번 진동한다는 겁니다. 전파니까 이런 진동수가 가능하죠.

빌딩이 충격을 받으면 콘크리트나 철골 등 건물 구조물도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을 시작합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아이돌 연습생이 춤을 추자 안무연습실 바닥이 위아래로 진동을 시작했죠.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초에 6.6번 진동했다고 하죠. 즉 안무연습실 바닥의 고유주파수가 6.6㎐라는 말입니다.

바닥의 진동은 충격이 계속 전해지지 않거나 고유주파수에 들어맞지 않으면 점점 줄어듭니다. 징을 쳐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떨림과 소리가 사라지잖아요. 빌딩 바닥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빌딩이 흔들릴 정도에 이르기 힘듭니다. 하지만 힘이 계속해서 고유주파수에 맞춰 가해지면 얘기가 다르죠.

SM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의 춤 연습이 디타워 흔들림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춤을 춘 아이돌 혹은 연습생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은 2021년 1월 1일 SM 소속 걸그룹 에스파가 온라인 중계로 진행된 SM타운 라이브 '컬처 휴머니티 'Culture Humanity'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는 장면. 뉴스1

SM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의 춤 연습이 디타워 흔들림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춤을 춘 아이돌 혹은 연습생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은 2021년 1월 1일 SM 소속 걸그룹 에스파가 온라인 중계로 진행된 SM타운 라이브 '컬처 휴머니티 'Culture Humanity'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는 장면. 뉴스1

이번 사건의 경우, 춤 연습 때의 발 구름 주파수는 특이하게도 빌딩 바닥의 고유주파수와 비슷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발 구름의 주파수는 약 2.2㎐였다고 합니다. 즉 1초에 2.2번 바닥을 쿵쿵 울렸다는 겁니다.

빌딩 바닥의 고유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딱 배수 관계는 이뤄졌죠. 이렇게 어느 정도의 주기가 일치할 때, 타이밍만 잘 들어맞으면 바닥의 진동은 점점 ‘증폭’됩니다. 즉 진동의 ‘진폭’이 점점 커졌다는 거죠. 바닥의 흔들림이 잦아들 찰나 발이 '쿵' 하고 울렸고, 다시 잦아드나 싶으면 발이 '쿵' 하고 울리며 진폭이 커진 겁니다.

디타워 고유주파수와 춤 연습 중 발 구르기 주파수

디타워 고유주파수와 춤 연습 중 발 구르기 주파수

그네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빠가 아이의 그네를 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려면 아빠는 어떻게 밀어야 할까요. 첫 번째 방법은 그냥 한 번에 세게 미는 겁니다. 강력한 힘을 주면 그네를 대번에 높이 올릴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아이가 타는 그네의 리듬에 맞춰 적절한 힘으로 반복적으로 미는 겁니다. 힘이 약해도, 그네가 두세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민다 해도 타이밍만 잘 맞추면 그네는 높이까지 올라가죠.

그중 두 번째 방법, 즉 타이밍에 맞게 진동을 크게 한 게 바로 그날 SM 안무연습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이 많지 않았어도 건물이 진동하는 주기에 딱딱 맞춰 발을 구르면서 바닥의 진동을 크게 만들 수 있었던 거죠. 바닥의 진동이 커지면서 건물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다른 층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흔들림이 커졌던 겁니다.

이렇게 물체의 주파수와 외부 힘의 주파수가 딱 맞으면서 점점 진동이 커지는 현상을 공진(共振·resonance) 이라고 합니다. 음파나 전파에 대해서는 공명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상 같은 원리입니다.

공진, 드문 현상은 아니다…붕괴 일으키진 못해

이런 현상은 11년 전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에서도 발생한 적 있습니다. 2011년 7월 5일 강변 테크노마트 입주자들은 바닥이 배처럼 출렁거릴 정도의 진동을 경험해서 겁에 질렸죠. 이 일도 12층 피트니스센터에서 스무 명 남짓이 모여 했던 태보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태권도와 복싱과 에어로빅을 합친 운동인 태보를 많은 사람이 그 빌딩의 고유주파수와 맞는 박자로 움직이자 공진을 일으킨 겁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태보 강사가 부임 첫날이라 의욕이 넘쳐 강도 높은 동작을 계속 반복시켰다고 하네요.

그런데 왜 지진감지장치에는 이 진동이 잡히지 않았을까요. 보통 지진감지장치는 수평 진동에 민감합니다. 빌딩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보다 옆으로 흔들리는 것에 훨씬 취약하기 때문이죠. 이번 사건은 빌딩이 수직으로 진동했기 때문에 지진감지장치에는 전혀 잡히지 않았던 겁니다.

혹시 일부 입주자가 걱정했던 것처럼 진동으로 인한 충격이 축적돼 건물이 붕괴하거나 손상되지는 않을까요. 전문가들은 그럴 염려는 접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김형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일반적 생활진동 때문에 건물이 수직 방향으로 진동해도, 건물 자체가 이를 감쇠시키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건물이 붕괴할 정도까지 에너지가 증폭하지는 않는다. 생활진동 때문에 공진이 일어나도 건물이 붕괴하는 수준에 도달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진 현상으로 무너진 건축물이 있기는 합니다. 미국 타코마 해협 다리가 그런 사례죠. 타코마 해협 다리는 바람의 흐름 때문에 다리의 흔들림이 커지면서 무너졌습니다. 마치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물론 다리는 무거우니 깃발처럼 세차게 나부끼지는 않지만, 그 흔들림이 조금씩 증폭되면서 무너져내린 거죠. 이번 사례와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공진이 맞습니다.

1940년 무너지고 있는 타코마 해협 다리. 바람의 난류로 인한 일종의 공진 현상으로 붕괴됐다. 이번 디타워 진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로 보기는 힘들다.

1940년 무너지고 있는 타코마 해협 다리. 바람의 난류로 인한 일종의 공진 현상으로 붕괴됐다. 이번 디타워 진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1940년 개통한 이 다리를 설계할 때엔 바람의 동역학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강영종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일종의 공진 현상이긴 하지만 현대에선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요즘은 교량을 설계할 때 바람의 동역학을 고려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마천루에도 지진이나 강풍으로 건물이 흔들려 붕괴하는 걸 막아주는 장치가 설치돼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은 높이 만큼 옆으로 휘청이는 데 취약하기 때문이죠.

진동 방지 장치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동조질량감쇠기’입니다. 건물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쇳덩어리 같은 무거운 물체를 건물 고층부 한가운데 설치하죠. 쇳덩어리엔 스프링처럼 탄성 있는 연결 장치를 매어놓습니다. 이 쇳덩어리는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면 관성에 의해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기울면서 진동을 줄여주죠. 건물이 흔들흔들하는 ‘고유주파수’에 맞춰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공진’이 고유주파수와 일치해서 진동을 증폭시킨다면 이건 그 반대로 작용해서 진동을 감소시킵니다.

아, 그리고 앞서 말했던 디타워 진동 사건의 뜬소문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창문이 부서지거나 물이 새는 현상은 진동 때문이 아니라 단순 하자였다고 하죠. 성동구청도 정밀안전진단을 시행한 결과 “건물 외관 및 기둥과 보 등 주요 구조 부재에 중대한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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