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권도 짐 검사도 없다…15시간 '순간이동' 백악관 전세기 [바이든 순방 동행기]①

중앙일보

입력 2022.05.20 14:54

업데이트 2022.05.20 20:29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바이든 순방 전세기에 타다

이 비행기엔 없는 것투성이다. 타는 사람 손엔 여권이 없다. 탑승권도 없어 불러주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영화ㆍ음악ㆍ뉴스 같은 기내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잡지ㆍ신문 등 시간 때울 거리도 하나 없다. 항공사 로고 같은 시각물도 없다. 자동차로 치면 ‘깡통 차’ 같은 느낌. 여행의 즐거움은 논외로, 오로지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실어나르는 이동 기능에만 충실하다. 그런데도 전 세계 기자들이 이 비행기에 타려고 애썼다. 세계 최고 권력자의 해외 방문 일정을 코앞에서 취재할 유일한 통로라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함께 한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White House Press Charter)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덜레스공항에서 이륙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레바논 기자 등 54명이 탑승하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덜레스공항에서 이륙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레바논 기자 등 54명이 탑승하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엔 미국 정부 항공기 두 대가 떴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한국을 향해 출발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과 이보다 15시간 앞서 이륙한 미디어 전세기다. 바이든 대통령의 첫 방한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18일 백악관 기자단 일원으로 전세기에 올랐다. 백악관을 취재하는 각국 기자들과 한ㆍ일 순방을 지원하는 일부 행정부 공무원들과 함께였다.

이번 순방 때 에어포스원에 바이든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풀 기자 13명이 탔다. 이들은 에어포스원에서 취재한 내용을 즉각 백악관 기자단에 이메일로 공유한다.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일 순방에 관해 기자들과 59분간 한 문답도 이런 방식으로 백악관 기자단 전체에 공유됐다.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도 하기 때문에 일반인을 포함해 누구나 직접 들을 수도 있다. 백악관이 지향하는 투명하고 열린 국정 홍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국ㆍ내외 출장에 통상 두 대의 비행기를 동원한다. 에어포스원은 최대 약 70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데,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고위 참모들, 경호국 요원과 일부 기자가 타면 꽉 찬다. 대통령 취재를 원하는 기자를 모두 태울 수 없어 미디어 전세기를 운영한다. 대통령 행보를 실시간으로 상세히 알리는 것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와 언론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 내부 모습. 기내 엔터테인먼트가 제공되지 않아 개인 화면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백악관 전세기=박현영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 내부 모습. 기내 엔터테인먼트가 제공되지 않아 개인 화면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백악관 전세기=박현영 특파원

한·일·레바논 기자 등 54명 북적거려

전세기에는 미국 기자를 포함해 한국, 일본, 대만, 레바논 기자 등 54명이 탑승했다. 사전 준비를 위해 더 일찍 한국에 입국한 기자들, 일본만 취재하는 기자들까지 더하면 취재진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비용은 참여 언론사가 분담한다.

전세기 탑승 때 여권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출발 약 보름 전 일찌감치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백악관 전세기는 민간 항공기와 탑승 절차와 보안 검색 등 여러 면에서 달랐다. 기내에 들고 타는 짐과 신체 보안 검사가 없었다. 컴퓨터를 꺼내고, 신발 벗고 양손 들고 신체를 촬영하고, 일정한 크기가 넘는 액체류는 압수하는 일반 공항 보안 검색 절차는 생략됐다. 아무런 제지 없이 집에서 챙겨온 짐을 그대로 들고 탔다. 이 비행기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될까, 궁금해졌다. 이미 제출한 여권으로 신원조회를 모두 마친 데다 백악관과 국무부를 취재하는 비교적 균질한 집단이란 점을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안전 보장에 확신이 있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 실내 모습. 와이파이 서비스가 된다고 표시돼 있는데, 고장을 일으켜 15시간 비행시간 내내 먹통이었다. 백악관 전세기=박현영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 실내 모습. 와이파이 서비스가 된다고 표시돼 있는데, 고장을 일으켜 15시간 비행시간 내내 먹통이었다. 백악관 전세기=박현영 특파원

와이파이가 고장 나는 바람에 비행시간 15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 국내외 출장에 예닐곱번 동행했는데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기자는 책 두권을 모두 부치는 짐에 넣었다며 허탈해했다. 또 다른 기자는 유럽 방문 때보다 전세기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지난해 상반기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영국·벨기에·스위스를 순방하고, 하반기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이탈리아와 영국, 바티칸을 찾았을 때는 200명 넘는 기자단이 동행했다고 한다.

미국의 오래된 대서양 동맹이 현실이라면 아시아·태평양 동맹 강화는 비교적 최근의 노력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미국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긴다는 '피벗 투 아시아'를 선언한 게 불과 10여년 전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승무원 대신 백악관 직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ㆍ외 출장에서 미디어 일정 관리를 전담한다. 기장의 인사나 안내도 없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는 20일 오전 1시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했다. 탑승객들이 미군 지원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모습. 오산=박현영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함께하는 백악관 미디어 전세기는 20일 오전 1시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했다. 탑승객들이 미군 지원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모습. 오산=박현영 특파원

비현실적인 입·출국…15시간 비행이 ‘순간 이동’한 듯

목적지인 오산 미 공군기지에 내린 시간은 오전 1시. 환하게 불을 밝히고 미군 병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준비해 놓고 우리를 맞았다. 많은 인원이 비행기에서 내려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버스를 타고 오산 기지를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 입국 심사는 생략됐다. 한ㆍ미 양국 간 사전에 협의해 완료한 듯 보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보안검색대와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않으니 한국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순간 이동한 듯했다.

미국 국경 통제를 담당하는 부서인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국(CBP) 직원들이 기자단에 동행하며 출ㆍ입국 절차를 관리했다. 다음 주 워싱턴으로 돌아갈 때까지 여권을 손에 쥘 일이 없다. 전세기가 미국 본토에서 주한 미군 기지, 주일 미군기지를 거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평소 이렇게 이동하는 데 익숙한 미국 공직자와 언론인들이 미국의 위상이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시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BP 직원의 탑승을 알게 된 뒤 보안 검색이 없어도 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CBP는 세관과 출입국 심사를 포함한 막강한 법 집행 기관이다. 그들과 동승해 엉뚱한 마음을 먹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번 취재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한국-일본-미국 여정 중 비행기에 탈 때, 내릴 때 검사받는 건 기본이고, 매일 오전 9시까지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확진되면 호텔 방에서 격리해야 한다. 다음 행선지 비행기에 타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에선 마스크를 거의 안 쓰던 기자들도 먹을 때를 제외하곤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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