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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과 전쟁의 시대, 이단아들을 통해 본 일본 근대미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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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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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미술 순례1
서경식 지음
연립서가

퀭하지만 맑은 눈망울의 청년이 손에 해골을 든 채 앞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다. 일본 서양화가 나카무라 쓰네의 1923년 작품 ‘두개골을 든 자화상’.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한 첫 그림부터 강렬하다. 어두침침하지만 묘하게 터져 나오는 생생한 기운. 그 에너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시대 배경은 1920~1945년. 역병(스페인 독감)과 전쟁(세계대전)의 시대에 예술, 그것도 ‘일본 근대미술’이란 막막한 길을 열어나간 여섯 명의 화가와 한 명의 조각가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 예술가들을 일본미술계의 ‘이단자들’이라 부른다. 과감하면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그들의 예술적 행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곱명 모두 일찍 요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류로 편입되기엔 너무 젊은 나이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책 주인공은 일본 근대화가들이지만 이들을 소개하기 위해 동원된 유럽 화가들의 작품까지 모두 담고 있어서 그림이 상당히 풍성하다. 등장하는 주요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설명까지도 친절하고 세심하다. 두껍지 않은 작은 책인데 밀도가 상당해서 진하게 우려진 녹차처럼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이건 보통 내공이 아니다 싶은데, 30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인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일흔 넘어 낸 역저이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보듯 근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만, 그 대상이 일본이라면 솔직히 좀 복잡한 기분이 든다. 식민 지배를 받던 당시 조선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어서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을 아는 게 ‘진정한 자기 이해와 정신적 독립’을 위한 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이 무엇에 어떻게 침식당했는지를 ‘미의식’ 수준으로 파고 들어가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 역시 재일조선인 2세이기 때문에 그 말이 더 설득력 있다. 저자는 군부에 저항한 양심적 예술인으로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는 마쓰모토 슌스케를 소개하며 ‘그가 지닌 휴머니티 범위 안에 조선인이 포함되는지 의문’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지금이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역병(코로나)과 전쟁(우크라이나 사태)의 시대라는 점에서 책의 출간 타이밍이 절묘하다. ‘원폭도’로 유명한 마루키미술관에서 시작될 예정이라는 『나의 일본미술 순례2』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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