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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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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케미’. 영어 단어 케미스트리(chemistry)를 줄인 말이다. 화학이라는 뜻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학 작용, 즉 ‘끌리는 정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영어로 “We have very good chemistry”라고 하면 “서로 잘 통한다” 또는 “죽이 잘 맞는다”는 의미다.

한·미 정상만큼 ‘케미’를 따지는 조합도 없다. 한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 순방길은 줄곧 미국 방문이었다. 북핵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미국은 핵심 안보·경제 동맹국이다. 양국 정상 간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톱다운’ 방식의 정상외교에선 여러 현안이 담판 지어지기도 한다. 첫 만남이라면 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4월 첫 방미에 나섰을 때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미 대통령 전용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받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골프 카트 운전대를 잡고 조수석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앉은 장면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정작 양 정상의 케미가 통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만찬장에 앉아 양 정상 내외가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던 순간이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시는 기도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고 떠올렸다. 부시 대통령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 전 대통령은 방미길에 영문 기도문을 따로 준비해갔다.

윤석열(62) 대통령과 조 바이든(80) 미 대통령이 21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 데뷔전이다. 양 정상 모두 학창 시절 법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제외하곤 공통점이 거의 없다. 윤 대통령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걷다가 정치 참여를 선언한 지 9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만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6선 의원과 부통령을 지냈다.

윤 대통령이 제42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의 모티브를 따왔다는 연설에 주목한다. 1963년 6월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연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인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보면서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양 정상 간 케미를 터뜨리려는 복선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