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재 감독의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우리 시대의 가객인 정태춘과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박은옥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4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 울려 퍼졌던 그들의 수많은 노래 중 28곡이 흐르는 이 다큐는, 음악을 중심으로 사연을 엮어나간다. 여기엔 정태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다른 시선들도 스며든다. 바로 팬들의 이야기다. 여기엔 ‘92년 장마, 종로에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소년 인권 운동가가 있고, 노래 ‘5·18’에 맞춰 퍼포먼스를 한 아티스틱 수영 선수도 있다. 그리고 10대 때 ‘봉숭아’를 들으며 입문한 후 평생 정태춘과 박은옥의 팬으로 살아온 김미현씨도 소개된다.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정태춘이라는 예술가가 주인공이기에, 검열 철폐나 각종 투쟁의 현장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로 다큐는 구성된다. 하지만 가장 와 닿는 대목은 바로 김미현씨의 사연이며, 그의 이야기는 정태춘 음악의 핵심을 전달한다. 사춘기 시절부터 루 게릭 병을 앓고 있는 현재까지, 두 사람의 노래는 힘겨운 시대를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위로의 음악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을 찾았던 그는 정태춘의 친필 사인이 있는 포스터를 받은 후 감격한다. 거기엔 ‘봄’이라는 글씨가 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희망을 말한다. “내년 봄에도 이걸 볼 수 있을까요? 제게도 봄이 올까요?” 이 다큐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대목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