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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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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고영재 감독의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우리 시대의 가객인 정태춘과 그의 아내이자 동료인 박은옥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4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 울려 퍼졌던 그들의 수많은 노래 중 28곡이 흐르는 이 다큐는, 음악을 중심으로 사연을 엮어나간다. 여기엔 정태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다른 시선들도 스며든다. 바로 팬들의 이야기다. 여기엔 ‘92년 장마, 종로에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소년 인권 운동가가 있고, 노래 ‘5·18’에 맞춰 퍼포먼스를 한 아티스틱 수영 선수도 있다. 그리고 10대 때 ‘봉숭아’를 들으며 입문한 후 평생 정태춘과 박은옥의 팬으로 살아온 김미현씨도 소개된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정태춘이라는 예술가가 주인공이기에, 검열 철폐나 각종 투쟁의 현장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로 다큐는 구성된다. 하지만 가장 와 닿는 대목은 바로 김미현씨의 사연이며, 그의 이야기는 정태춘 음악의 핵심을 전달한다. 사춘기 시절부터 루 게릭 병을 앓고 있는 현재까지, 두 사람의 노래는 힘겨운 시대를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위로의 음악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을 찾았던 그는 정태춘의 친필 사인이 있는 포스터를 받은 후 감격한다. 거기엔 ‘봄’이라는 글씨가 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희망을 말한다. “내년 봄에도 이걸 볼 수 있을까요? 제게도 봄이 올까요?” 이 다큐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대목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