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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정태가 고발한다

'한동훈 헛발'뒤 "최강욱 기죽지마"…이게 집단 무지성 실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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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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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7월 최강욱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윤석열 수사 촉구 기지회견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후 그를 응원하는 '개딸'들이 최강욱 의원실에 보낸 화환. 그래픽=김은교

지난 2021년 7월 최강욱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윤석열 수사 촉구 기지회견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후 그를 응원하는 '개딸'들이 최강욱 의원실에 보낸 화환. 그래픽=김은교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남겼다고 알려진 명언이다. 문제는 토크빌이 저런 말을 한 적 없다는 것이다. 출전을 찾자면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였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적인 성향이었던 메스트르는 러시아에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것을 못마땅해하며 편지에 저 문구와 유사한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와 사회 진보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다. 게다가 흔히 알려진 것은 잘못된 인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정치권의 한심한 행태를 보며 한숨이 쏟아져나올 때, 그런 심경을 저것보다 더 잘 드러내어 보여주는 문장을 찾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 정치권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이 정치인 이전에 과연 한 사람으로서 저래도 되나 싶은 심각한 자질의 결여를 보여줄 때, 우리의 입에서는 메스트르의 탄식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9일부터 10일 새벽까지 이어졌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떠올려 보자. 국회의원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은 멀쩡히 '영리법인'이라고 표기된 기부자 '한**'를 한동훈의 딸이라고 주장하지 않나, 김남국 민주당 의원(안산시 단원구을)은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aunt)인 교수'라고 읽고는 스펙 품앗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치 술에 취한 듯 꼬인 발음에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한동훈을 향해 "비꼬는 겁니까?""내 질문이 웃깁니까?"라며 소리를 질러대던 이수진 민주당 의원(서울 동작구을)에 비하면, 최강욱과 김남국은 질문이라도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국회의원들의 수준과 자질 문제는 비단 이번 청문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동훈 청문회 직전 최강욱 의원이 김남국 의원 등 다른 의원들을 비롯해 보좌관들과 화상회의를 하던 중 "*** 치러 갔냐?"고 발언했던 사건만 해도 그렇다. 참여했던 보좌관 일부가 문제를 삼자 최강욱 의원은 해당 표현이 동전 장난의 일종인 '짤짤이'라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는 혼자 '치는' 것이고, '짤짤이'는 다른 사람과 돈을 걸고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공적 자리에서 성적 비속어를 사용한 게 드러났다.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민주당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대신, 일단 은폐하려 들다가 도리어 '너희들이 잘못 들었다'는 식의 역공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이제는 '내로남불' 같은 용어조차 퍽 한가하게 들릴 지경이다.

윤호중(왼쪽)·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성 비위 의혹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호중(왼쪽)·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성 비위 의혹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얼마 전까지 여당이었던, 단독으로 과반수를 넘기는 거대 야당의 분위기가 이러니, 하루가 멀다고 성폭력 고발이 불거져 나오는 것도 전혀 놀랍지 않다. 지난 12일 박완주(충남 천안을) 의원이 당내 성폭력 사건으로 제명당한 사건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당 김원이 의원 보좌관은 성추행 후 2차 가해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대체 왜 이럴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인격이나 업무 능력 면에서 국민의 대표가 되기에는 자질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국회의원이 된 것일까. 특히 민주당의 '처럼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민주당의 법사위 위원 상당수가 '처럼회' 소속이었다. 법사위는 각 당에서 나름 유능하고 똑똑하다는 법률 전문가들을 골라 보내는 상임위다. 비록 사시를 패스한 건 아니지만 각각 군 법무관과 변시(로스쿨) 출신인 최강욱 의원과 김남국 의원은 변호사이고, 이수진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설마 대한민국의 변호사 판사들 수준이 다 저렇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다.

물론 개인의 자질과 인격과 능력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주장처럼 어떤 자격시험 같은 것을 본다면, 오히려 지금 국회에서 추태를 벌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시험 하나는 그럴듯하게 잘 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뭔가 잘못되어 있는 건 맞지만 특정인을 향해 '무식하다''한심하다''부끄럽다'고 나무라기만 하는 건 좋은 설명이 되기 어렵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홀몸이 아니다. 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인턴 1명으로 총 9명까지 보좌진을 꾸릴 수 있다. 최강욱과 그 보좌진은 과연 '한**'가 영리법인이며 한동훈의 딸일 수는 없다는 걸 몰랐을까? 김남국과 그의 팀 중에서 '이모'를 '이 모 교수'라는 뜻으로 읽어낼 수 있는, 그러니까 중·고생 수준의 정상적 문해력을 지닌 사람이 과연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물론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청문회 영상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 각각을 떼어놓고 차분히 물어본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것 같지도 않다. 이것은 특정인의 자질 이전에 일종의 '집단 무지성'이 작동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갤럽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계기로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이 무려 10%p가량 폭락했다. 민주당 지지자 중 일부는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차마 '내가 저 당을 지지한다'고 할 수 없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황당무계한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이른바 '정치 고관여 층'으로서 화환을 보낸다거나, 문자 폭탄을 날린다거나, 조직적으로 '좌표'를 찍고 신문 기사에 악플을 남기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며 정치인들을 쥐락펴락한다.

지난 13일 민주당 지지자들이 최강욱 의원에게 보낸 화환.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지난 13일 민주당 지지자들이 최강욱 의원에게 보낸 화환.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문제의 한동훈 청문회가 끝난 후 최강욱 의원실에는 화환이 몇 개 배달됐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열성 지지층, 소위 '개딸'들이 보낸 것이다. 그 화환에 붙어 있던 문구를 통해 민주당을 낮은 곳으로 인도하는 집단 무지성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최강욱 앞만 보고 달려라 뒤는 개딸들이 맡는다''민주당의 1등 공신❤️최강욱 처럼회 처럼해'.

여기까지 써놓고 봐도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원 몇 사람이 바보일 뿐인가, 아니면 그들을 바보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둘 중 뭐가 옳건 지금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국민은 스스로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테니, 국민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나라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