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땅 판뒤 줄줄이 병 걸렸다…현대화됐다는 러군 실체

중앙일보

입력 2022.05.19 16:20

업데이트 2022.05.19 16:28

항복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민이 건넨 빵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항복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민이 건넨 빵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자국군을 학대하는 크렘린궁이 우크라이나에서 승리를 챙기기는 어렵다."

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다라 마시콧 선임 정책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장비 현대화엔 성공했지만, 병사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경향은 여전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보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6일 전, 한 러시아군 부대는 벨라루스에 모여 있었다. 사병 중 한 명이 금지 비품인 휴대폰을 갖고 있다가 "러시아가 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서방 언론의 뉴스를 봤다. 훈련 중인 줄 알았던 병사는 깜짝 놀라 고향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서방의 거짓말일 뿐"이라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며칠 후 군대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고, 이 병사는 이후 소식이 끊겼다. 아들과 마지막 통화에서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믿지 말고 직접 확인하라"고 들은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언론에 이를 제보했다.

러시아군이 벨라루스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을 때 체르노빌 원전을 우회하지 않고 관통한 것도 대표적인 '병사 학대' 사례로 꼽힌다. 러시아 지휘부가 방사선 노출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군인들은 방사선 피폭 땅에 참호를 깊게 판 후 보호장비도 없이 노출됐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병사가 병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마시콧 연구원은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사고는 러시아군의 병사 학대가 어떻게 전투 능력 약화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마시콧은 미국에선 훌륭한 군인은 곧 행복한 군인이며, 존중받는 군인이라는 점에서 러시아군과 차이가 크다고 했다. 러시아군 사령부는 군사적 목표가 우선이며, 병사를 뒷전으로 여기고 성공할 때까지 군대를 내던지는 전술을 택한다면서다.

그는 러시아군의 병사 학대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 동안 징집병을 전투에 투입한다는 사실을 숨겼으며, 1990년대 체첸 전쟁 때는 전투 경험 없는 징집병을 위험한 시가전에 투입했다.

체젠 전쟁에서 포로가 된 병사를 군 지도부가 무시한 가운데, 그들의 부모는 전쟁터에서 아들을 찾아야만 했다. 마시콧은 많은 사병의 어머니가 체첸으로 가서 체첸 반군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포로 교환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때도 군인 가족은 거짓 통보를 받았다. 전쟁에서 죽은 아들이 우크라이나 동부가 아닌 러시아에서 훈련 중 사고로 사망했다는 식 등이다.

러시아군 지도부가 비밀 유지 등을 위해 병사를 무시하는 하는 경향은 군대의 능력을 떨어뜨렸다. 이는 군의 준비 태세를 위태롭게 했으며, 스스로 곤경에 빠뜨렸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략은 "보안이 우선이고, 군인은 소모될 수 있다"는 가정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마시콧 연구원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전쟁 동안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2008년 조지아 침공 이후 러시아군은 현대적으로 변모했지만, 그때는 노후화한 장비를 교체한 것으로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군 최고 의사 결정권자에 있지만, 이들은 군대가 조직적인 '병사 학대'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군 지도부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단 크렘린궁에 충성하는 것으로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고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19만명(추정)을 투입했지만, 뒤를 받쳐줄 후방 부대가 없는 형편이다. 즉,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규모 동원령은 내리지 않는 이상 지금 군대가 소진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군대는 수천 개의 장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군 기피 현상이 그중 하나다. 마시콧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면 러시아 사회는 돈을 주고 징집 대상에서 빠지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과거의 행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또 전문적인 직업군으로 군을 전환하려는 시도는 20년이 넘었지만, 이런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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