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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안거치고 1심→대법 상고…"항소 효력 인정" 판례 바뀌었다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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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에 불복하면 항소, 그리고 2심 판결에 불복하면 상고를 하죠. 그런데 1심 판결이 끝나고 바로 상고를 했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1심 판결에 대해 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1→3심인 대법원으로 곧바로 상고하는 걸 '비약적 상고(飛躍上告)'라고 합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비약적 상고, 검사는 항소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대법원이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놨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그법알 사건번호 32] 2심 건너뛰고 비약적 상고...'항소 효력'도 있나요?

강도와 폭행,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2020년 길을 걷던 행인을 때리고 가방을 빼앗거나, 술집에서 만난 사람을 폭행하고 또 소란을 피워 업무를 방해한 혐의입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또 "강도죄 등으로 처벌받는 등 처벌 전력이 다수 있고, 특수협박죄 등으로 실형 처벌을 받았는데도 누범 기간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실형 3년의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이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를 생략하고 바로 상고장을 접수했습니다. A씨의 형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 검사는 항소장을 접수했고요.

2심 재판이 열리자 A씨 측은 일단 항소이유서를 냈습니다. 심신 장애 등을 주장하며 형이 너무 무겁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에 대한 판단을 따로 하지 않고, 검사의 항소 만을 판단했습니다. A씨가 항소를 하지 않았다고 전제한 거죠. 이유는,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면서 A씨가 제기한 '비약적 상고'는 효력을 잃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항소 기각. 1심 형량이 유지된 건데요. A씨는 또 한 번 상고장을 냈습니다.

관련 법령은!

우선 비약적 상고의 조건부터 살펴볼까요. 형사소송법 제372조에 따르면 1심 판결이 인정한 사실에 대하여 ‘법령을 적용하지 않았거나 법령의 적용에 착오가 있는 때’, 또는 1심 판결이 난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비약적 상고가 가능합니다.

또 같은 법 제373조는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습니다. '제1심판결에 대한 상고는 그 사건에 대한 항소가 제기된 때에는 그 효력을 잃는다.' 즉 원고와 피고 중 한쪽은 비약적 상고, 한쪽은 항소를 제기할 경우 비약적 상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겁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항소심과 상고심이 동시에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입니다.

이쯤 되면 "항소장이든 상고장이든 1심 판결에 불복한다는 뜻은 같으니, 일단 2심 재판이 열렸다면 비약적 상고도 항소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우리 기존 대법원 판례는 비약적 상고의 상고 효력뿐 아니라, 2심에 대한 항소 효력도 인정할 수 없다고 봐 왔습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도 A씨가 비약적 상고를 제기한 뒤 검사가 항소했으니 비약적 상고는 효력을 잃었다고 본 겁니다. 그리고 A씨의 항소 역시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죠.

바뀐 대법원 판단은?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착석해 있다. 뉴수1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착석해 있다. 뉴수1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즉, A씨의 비약적 상고 효력은 없어지더라도, 항소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73조에도 비약적 상고에 항소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고려해 법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A씨가 비약적 상고를 제기한 뒤 검사가 항소해 상고 효력은 사라졌지만, 1심 판결에 대해 다투고 싶다는 의사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검사 조치로 인해 피고인이 항소심과 상고심 판단을 받을 기회를 대부분 상실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건은 다시 2심 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A씨가 비약적 상고장을 내면서 1심 판결에 불복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항소 효력이 없다는 이유로 2심 재판부가 A씨 주장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비약적 상고를 제기한 피고인의 재판 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소송당사자의 절차적 권리가 보다 확대됐다"며 판결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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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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