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배우가 먼저 보였다. 뒤로 갈수록 그들이 하루하루 부대끼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야기다. 노희경 작가가 쓰고, 이병헌·신민아·차승원·이정은·한지민·김우빈·엄정화·김혜자·고두심 등 톱 배우들이 출동했다. 주인공 14명이 제주도를 무대로 각양각색의 인생 이야기를 펼치는 옴니버스 작품이다. 시장 상인, 얼음 장수, 해녀, 트럭 만물상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리는 덕에 제주도의 생생한 일상 풍경이 담겼다. 극 중 제주도민의 여행지로 등장하는 목포의 모습도 흥미롭다.
시장이 살아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제주마가 뛰노는 중산간의 목장과 감귤 농장 등 낯익은 풍경도 보이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재래시장이다. 주요 인물 대부분이 시장에 기대 사는 장사꾼이어서다. 덕분에 극 전체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세트가 아니라 실제 제주도 시내의 재래시장을 돌며 촬영했다.
이를테면 극 중은희(이정은)의 생선가게 ‘은희수산’이 자리 잡은 푸릉마을섭섭시장은 서귀포에 있는 매일올레시장의 풍경이다. 상설시장으로 서귀포 이중섭거리 인근에 있어 관광객에도 널리 알려진 명소. 제주올레 6코스가 시장을 관통한다. 활어 경매 장면은 성산포항 부둣가에서 주로 촬영했는데, 실제로 갓 잡은 활어를 판매하는 위판이 매일 서는 곳이다.
농수산물 파는 옥동(김혜자), 얼음장수 호식(최영준) 등 주인공들이 뻔질나게 오가는 오일장 풍경은 성산읍 고성오일시장에서 담았다. 매달 끝자리 4‧9일에 장이 서는 아담한 오일장인데, 옛 시골 장터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성산읍사무소 관계자는 “동네 어르신을 주로 상대하는 시장이어서 관광 상품이나 길거리 음식보다는 농수산물과 생필품 좌판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유일한 먹거리는 노점에서 파는 순댓국(6000원). 순댓국 파는 인권(박지환)의 캐릭터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었다.
여행 팁-기념품과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즐기고 싶다면 매일올레시장으로, 제주도식 민속 오일장을 느껴보고 싶다면 고성오일시장으로.
로맨스는 여기서
초보 해녀 영옥(한지민)과 젊은 선장 정준(김우빈)이 여행을 떠났던 낭만 섬은 가파도다. 서귀포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 가파도는 해발 20.5m로 제주도에서도 가장 키가 작고, 순한 섬으로 통한다. 언덕길이 없어 두 발로 걷기도 좋고, 두 주인공처럼 자전거를 타고 누비기에도 좋다. 전체 면적(0.9㎢)의 65%가 보리밭인데, 청보리의 푸른빛이 섬 전체를 물들이는 3~5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해안길과 마을길을 이어 2009년 제주올레 10-1코스(4.2㎞)를 냈는데, 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10대 커플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이 남몰래 사랑을 키우던 장소는 월정리 제주밭담테마공원 앞 바닷가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카약 체험장으로도 유명한데, 체험장 옆에 두 사람이 앉았던 핑크빛 벤치가 남아 있다.
여행 팁-영옥‧정준 커플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던 장소는 가파도 서쪽 ‘큰옹진물’ 옆 풀밭이다. 푸른 바다와 송악산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장소다.
풍차 길옆 드라이브
해안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죽 늘어선 그림 같은 풍광은 제주도 서쪽 끝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 담았다. 한경면 신창리 해상 풍력단지에서 차귀도 포구까지 이어지는 6㎞의 해안길은 제주도에서도 이름난 드라이브 코스다. 해 질 녘 풍차 뒤로 붉은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아름다운 해안 길은 또 있다. 트럭 만물상 동석(이병헌)의 차가 섬마을을 도는 원경은 비양도 해안도로 위에 드론을 띄워 담았다. 동석과 선아(신민아)가 재회하는 도로는 대정읍 환태평양 평화 소공원 옆길이다. 모슬포항과 송악산(488m)을 잇는 해안도로로 산방산(395m) 전망이 워낙 빼어나 자전거족 사이에서도 정평이 났다.
여행 팁-신창풍차해안도로 중간에 ‘싱게물 공원’이 있다. 과거 용천수를 이용해 목욕탕으로 쓰던 공간. 지금은 생태 공원이자, 풍차를 가까이 담을 수 있는 사진 맛집으로 유명하다.
목포로 추억여행 가볼까
제주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은희와 한수(차승원)는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되살려 전남 목포로 여행을 떠난다. 우연한 설정은 아니다. 목포는 예부터 제주도민의 단골 여행지였다. 1960년대 이미 제주~목포 바닷길이 뚫렸다.
은희와 한수의 목포 여행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제주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목포항에 도착한 다음, 목포대교를 드라이브하고,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목포역 인근 목포근대역사관 거리와 건해산물상가 거리를 거닌다. 간단한 동선은 아니지만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법하다. 촬영지가 유달산(228m) 자락에 몰려 있다. 유달산 노적봉 아래에는 ‘호텔 델루나’의 주무대였던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남쪽 자락 시화동 골목 초입에는 영화 ‘1987’에 등장한 ‘연희네슈퍼’가 보존돼 있다.
여행 팁-어린 은희와한수가 입을 맞췄던 추억의 계단길이 건해산물상거 거리(해안로 237번길) 골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