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부동산과 연금

중앙일보

입력 2022.05.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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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부동산과 연금은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삶의 근간이 된다. 부동산은 가정생활이나 경제활동의 토대를 이루고 있고 평생 나와 함께한다. 장수시대에선 연금도 노후의 근간이 된다. 노인들의 소득과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충실한 연금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연금 없는 장수는 상상하기 어렵다.

둘째, 장기로 운용해야 한다. 부동산을 자주 매매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래 보유한다. 20년 살다 보니 집값이 몇 배로 뛰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연금 역시 장기로 운용한다. 30세에 연금에 가입하고 60세부터 90세까지 수령한다고 해보자. 적립과 인출 합하여 60년 동안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초(超)장기 상품이다.

장수시대 노후의 근간은 연금
부동산과 달리 돈 증식 어려워
대부분 예금처럼 여기기 때문
주식·부동산 등 자본 늘려가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셋째, 환금성이 적다. 부동산은 취득세·등록세와 같은 거래 비용이 있어서 쉽게 사고팔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당장 팔리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매매되는 주식과는 차이가 크다. 연금은 정도가 더 심하다. 퇴직연금은 법에 정한 사유가 아니면 중도 인출할 수 없다. 연금저축도 연금 수령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55세 이전에 인출하면 적립하면서 받았던 세액 공제 혜택을 대부분 반납해야 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부동산과 연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이를 활용해 노후 준비를 했다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런데 연금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연금 백만장자들이 쏟아지는 판에 우리는 부동산 백만장자만 쏟아진다. 그래서 퇴직연금마저 헐어서 부동산을 사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동산과 연금이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이 둘이 보유하는 자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과 같은 자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에서는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주로 보유하고 있다.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서 투자상품의 비중이 20%, 원리금보장상품이 80%에 이른다. 세제적격 개인연금도 투자상품을 편입하는 연금 펀드는 1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원리금을 거의 보장하는 보험과 신탁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연금은 예금을 80% 이상 담고 있는 셈이다. 예금은 시간이 50년 지나도 가치가 오르지 않지만 자본은 50년 지나면 그 가치가 크게 오른다. 땅값 오른다는 말은 하지만 예금 가격 오른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연금에 예금이 아닌 자본을 담고 있다. 미국 퇴직연금 401(k)에서는 주식형펀드의 비중이 60%이며 혼합형펀드를 더하면 87%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거의 정반대의 자산 배분을 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반등하던 2020년 기준으로 미국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401(k) 계좌 중 연금액이 100만 달러(12억원) 넘는 가입자가 26만2000명이었다고 한다. 2009년 2만1000명에 비해서 대폭 증가했다. 연금에서 주식과 같은 자본을 많이 담고 있는 이유는 연금이 자본 투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금은 부동산보다 자본 투자에 더 적합하다. 연금은 젊을 때 30년 동안 적립하고 퇴직 후에 30년간 운용하며 인출한다. 적립할 때는 시기를 충분히 분산해서 자산을 매수하게 된다. 시간 분산을 통해 자산 가격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반면에 부동산은 어떤 한 시점에 목돈을 투입해서 사는 것이기에 사는 시점을 분산할 수 없다. 매수 시점이 고점이었다면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만일 일본의 1990년대 초 자산 버블기에 부동산을 샀다면 자본 증식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으면 버블의 고점에 자산을 왕창 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부동산은 한 두 가지 물건에 집중 투자하는 반면, 연금은 펀드 등을 통해 여러 자산에 나누어 투자하기에 안정적이다.

노후 준비 수단을 물어보면 부동산이라 답하는 사람이 많다. 반만 맞는 말이다. 연금에서 예금이 아닌 자본을 보유하면 부동산보다 안정적으로 자산을 증식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처럼 ‘자본을 보유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하는 행태’를 연금에서 유지한다면 연금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연금도 부동산 투자하듯이 해보자.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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