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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값 두달새 12% 급락, ‘닥터 코퍼’의 경기침체 경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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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경기 흐름을 선제적으로 짚어줘 ‘닥터 코퍼(Dr.Copper·구리박사)’로 불리는 구리 가격이 t당 1만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거침없이 오르던 구리 값이 두 달 보름 만에 12% 급락하자 글로벌 경기 침체의 ‘경고’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는 t당 9366달러(약 1189만원, 3개월 선물 가격)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던 지난 3월 4일(1만674달러)과 비교하면 두 달 보름 만에 12.3% 급락한 것이다. 지난달 25일 t당 1만 달러 선이 깨진 뒤 16거래일 연속 900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구리를 포함한 알루미늄과 아연 등 6개 주요 비철금속 가격지수(LMEX) 하향세도 뚜렷하다. LME에 따르면 이날 LMEX는 4483.9로 연고점을 찍은 지난 3월7일(5505.7)보다 18.6% 떨어졌다.

구리는 원유나 금(金)보다 지정학·정치적 영향을 덜 받는 원자재다. 게다가 스마트폰부터 자동차와 건설 등 제조업 각 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그래서 경기가 살아나면 구리 몸값은 뛰고, 가라앉으면 가격이 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보다 경기를 잘 예측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근 구리 값의 하락은 상하이와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도시의 코로나 봉쇄 영향이 크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구리 소비국이다.

수퍼 달러(달러 강세)에 위안화 가치가 급락한 것도 구리 값 하락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구리 같은 원자재는 미국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값이 오르면 부담이 커진다.

금융투자 업계의 원자재 전문가 대다수는 최근 구리 값 하락세를 중국발 코로나 봉쇄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건 코로나19 재확산이 없다면 다음 달 1일부터 상하이 봉쇄를 해제한다는 중국 당국의 발표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상하이 봉쇄가 풀리면 제조업 경기가 회복하면서 구리 값이 다시 반등할 수 있다”며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와 페루의 정치 불안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도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닥터 코퍼’가 경기 침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각국이 푼 유동성으로 자산가격은 치솟고 국가 부채는 크게 늘었다”며 “미국 등 각국 중앙은행의 돈줄 죄기 본격화로 거품이 꺼지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리 값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7월부터 6개월 동안 68%(장중 기준)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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