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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 죽어" 야쿠자 협박에, 야쿠자 경호원 뒀다…목숨 건 취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범죄전문가이자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저자인 제이크 아델스타인.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범죄전문가이자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저자인 제이크 아델스타인. [인스타그램 캡처]

“쓰지 말아라. 안 그러면 널 죽이겠다.”
도쿄 최대 야쿠자로 꼽히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핵심 조직 고토구미(後藤組)의 수장 고토 타다마사(後藤 忠政·79)는 지난 2004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 기자인 제이크 아델스타인(53)에게 부하를 보내 이렇게 협박했다. 미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이뤄진 고토와 미 연방수사국(FBI)의 거래를 아델스타인이 추적하고 있을 때다. 요미우리 신문 본지의 첫 외국인 기자이자 일본 범죄 전문가인 아델스타인이 야쿠자 취재 기록을 모은 책 『도쿄 바이스』에서 밝힌 내용이다.

아델스타인은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호원 겸 운전사로 전직 야쿠자를 고용했다. 그렇게 지낸 기간이 5년이다. 그는 17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살해 협박을 허투루 들은 적은 없다”며 “월말에 라면만 먹게 되더라도 경호원 월급은 꼬박꼬박 줬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도쿄 바이스』를 내려고 할 때도 출판사들이 난색을 보여 한참 후인 2009년에야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이 마이클 만 감독이 연출해 지난 4월 HBO 맥스에서 방영한 동명의 미국드라마 원작이다.

싸우다 가라데 입문…교환학생으로 日 정착

일본 범죄전문가이자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저자인 제이크 아델스타인.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범죄전문가이자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저자인 제이크 아델스타인. [인스타그램 캡처]

아델스타인은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 외곽의 작은 마을 맥베인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싸운 것을 계기로 가라데를 배웠고, 일본 선불교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도쿄 소피아대학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한 뒤 아예 정착했다. 절의 다락방에서 살면서 선불교 승려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영화 번역이나 스웨덴 마사지를 했다. 대학 졸업 후 4시간에 걸친 일본어 시험과 면접을 거쳐 일본 최대 요미우리 신문에 첫 외국인 기자로 입사했다.

아델스타인은 신입 기자 때 야쿠자를 처음 만났다. 홍등가에 있는 한 야쿠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는 그는 “그 남자가 말을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사업가처럼 좋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소매 밖으로 문신이 가득했다”며 “그때 야쿠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물었고 그는 오랫동안 좋은 취재원이었다”고 했다. 야쿠자가 라이벌 조직을 경찰에 밀고하고, 경찰은 라이벌 야쿠자 간 살해 등엔 관여하지 않거나 작전을 미리 알려주는 등 야쿠자와 경찰, 언론 간의 내밀한 시스템도 알게 됐다.

“자민당, 야쿠자보다 日에 더 큰 피해” 

지난 4월 HBO 맥스에 방영된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4월 HBO 맥스에 방영된 미국드라마 '도쿄 바이스' 원작. [인스타그램 캡처]

아델스타인이 고토와 FBI의 거래를 폭로한 이후 고토는 야마구치구미에서 퇴출당했다. 이후 부동산 중개인 살해 사건에 연루되자 2008년 캄보디아로 피신해 은퇴를 선언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2015년 “은퇴 후에도 일본과 캄보디아의 돈세탁에 관여하는 등 야마구치구미를 돕고 있다”며 그를 금융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다. 고토는 현재는 일본으로 돌아와 2011년 냈던 자서전의 영문판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아델스타인은 인신매매 사건을 마지막으로 2006년 요미우리 신문을 나왔다. 미국 국무부를 도와 인신매매 현황을 조사하는 등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2년 일본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핵 시설 노후화를 은폐한 탓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자초했다고 폭로했고, 일본의 올림픽 유치에 야쿠자 자금이 어떻게 조달됐는지도 밝혀냈다. 그는 “아베도 야쿠자의 후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며 “자민당이 야쿠자보다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범죄 피해자들도 돕고 있다. 비영리단체 ‘라이트하우스’ 이사 겸 고문으로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하고, 실종 사건 관련 팟캐스트도 진행 중이다.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다. 그는 “가끔은 다 관두고 승려가 될까 생각도 한다”면서도 “우리는 바로잡아야 할 불의에 직면해있고, 진실만이 거짓과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일종의 사명감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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