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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없었다면 길거리서 놀았겠죠" 농촌 청소년의 아지트 '고산의 미래'

중앙일보

입력

17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일본 전통 음식 '밤만주'를 만드는 요리 수업을 받던 여학생들이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고 있다. 사진 완주군

17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일본 전통 음식 '밤만주'를 만드는 요리 수업을 받던 여학생들이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고 있다. 사진 완주군

다시 문 연 청소년 아지트 '고래'  

17일 오후 4시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
학교 수업을 마친 남녀 중학생 20여 명이 삼삼오오 수다를 떨거나 홀로 책을 읽으며 쉬고 있었다. 탁구대에서는 남학생들이 라켓을 휘둘렀다.

별관에서는 일본 전통 음식 화과자인 '밤만주'를 만드는 요리 수업이 한창이었다. 여학생 10명이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소금과 설탕의 양을 재고, 물엿과 계란·버터 비율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래'가 다시 청소년들로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 후 고산면을 비롯한 인근 6개 면 지역 초·중·고등학생이 모이기 시작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남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 완주군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남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 완주군

완주군, 농협 창고 2개 동 사들여 개조  

고산초 인근에 있는 '고래'는 완주군이 2017년 7월 농협 창고 건물 2개 동(연면적 450㎡)을 사들여 프로그램실·청소년아지트·세미나실·북카페·노래방 등으로 개조한 곳이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농촌 지역 청소년들이 하교 후 잠시 쉬면서 공부하거나 서로 대화하는 소통 거점공간으로 운영되며 한때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다 두 달 전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로 다시 문을 열었다. 완주군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난달 18일 이후 평일 40~50명의 청소년이 '고래'를 찾고 있다.

학습 및 진로 상담, 요리 체험 등 '고래'에서 하는 4~5개 프로그램 참여율도 높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고래' 덕분에 자녀에 대한 고민을 덜어 반기는 분위기"라고 완주군은 전했다.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중학생들이 탁구를 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 완주군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중학생들이 탁구를 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 완주군

"고래처럼 큰 꿈 펼치길 바라는 마음 담아"

이날 '고래'를 찾은 고산중 3학년 강상엽(15)군은 "학교 수업을 끝내고 '고래'에 들러 30분가량 쉰 뒤 다시 학원에 간다"며 "일주일에 평균 4~5일은 이곳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고래'가 없었다면 편의점이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며 "이곳은 안방과 같은 나만의 천국"이라고 했다.

'고래'는 완주군이 파견한 청소년지도사 2명과 청소년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고산의 미래'와 '오래된 미래'를 뜻하는 센터 이름도 이곳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제안하고 투표로 결정했다. "넓은 바다를 누비는 거대한 포유류(고래)처럼 청소년들이 큰 꿈을 꾸며 세계로 나가자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게 완주군 설명이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한 학생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사진 완주군

전북 완주군 고산면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한 학생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사진 완주군

센터 측 "학교 밖 학교, 마을 도서관 역할" 

'고래' 운영위원장을 맡은 고산중 3학년 이장형(15)군은 "누나를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고래'를 방문했는데, 지난해 선배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위원장에 자원했다"며 "청소부터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하다 보니 꿈도, 실행 의지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래' 측도 일상 회복에 맞춰 'e스포츠 대회' 개최 등 청소년들이 원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김동훈(34) 청소년지도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청소년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며 "지역 청소년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대안문화 공간이자 학교 밖 학교, 마을 도서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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