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변비 아니라 필요없다? 당신이 몰랐던 파·당근·버섯 비밀 [쿠킹]

중앙일보

입력 2022.05.18 05:00

업데이트 2022.05.20 16:42

〈닥터라이블리의 부엌에서 찾은 건강〉

우리 몸 안에는 수많은 미생물(Microbiome)이 존재한다. 사진 Michigan Health Lab 홈페이지

우리 몸 안에는 수많은 미생물(Microbiome)이 존재한다. 사진 Michigan Health Lab 홈페이지

우리의 몸 안에는 세포 수보다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 몸에 사는 각종 미생물을 총칭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른다. 이 미생물들은 우리 몸의 면역 반응 조절, 대사 조절, 영양소 생산을 비롯해 정말 중요하고도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한다. 이번 칼럼은, 우리의 몸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두 번째 주제인 ‘마이크로바이옴’, 그중에서도 장내의 미생물 생태계인 ‘장내세균총’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한 면역 반응은 당뇨와 고혈압‧만성피로‧고지혈증 등의 만성 대사질환을 막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칼럼에서 강조한 내용인데, 혹시 잘 기억나지 않는 분을 위해 요점을 정리해보겠다. 건강한 면역 반응을 위해 우리는 ‘장의 염증’을 조절해야 하고, 그 첫 번째가 장벽이 흐물흐물해지는(장벽의 투과성이 증가하는) ‘장 누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 누수를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밝혀져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 칼럼에서 다룬 ‘글루텐’이고, 나머지 하나가 오늘 칼럼에서 다룰 ‘장내세균’이다.

장내세균총이 건강하지 못하면 장 누수가 발생한다. 흐물흐물해진 장벽을 타고 들어온 세균의 독소(Lipopolysaccarides, LPS)는 몸에서 과도한 면역 반응, 즉 ‘염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려운 부분을 다 차치하고 말하자면, 우리 몸의 건강한 면역 반응을 위해서는 건강한 장내세균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내 몸의 장내세균총은 어떤 상황에서 건강해지고, 어떤 상황에서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될까?

장내세균은 장 누수를 일으켜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사진 Atlas Biomed 블로그

장내세균은 장 누수를 일으켜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사진 Atlas Biomed 블로그

우리 몸은 정말 다양한 균들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 균들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유익균’, ‘유해균’으로 분류하는데, 사실 유해균이라 불리는 균들도 적은 양으로 존재할 때는 건강한 생태계의 일부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유해균이 과도하게 많아질 때다. 따라서 유익균과 유해균의 상대적 비율이 중요하다. 유익균이 많은 상태를 유지해 유해균이 생태계의 일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익균이 우세한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먹는 음식’에 답이 있다. 음식은 나의 에너지원인 동시에 ‘내 장내세균의 먹이’다. 유익균이 좋아하는 먹이를 주면 유익균들이 자라고, 유해균이 좋아하는 먹이를 주면 유해균들이 자란다. 그렇다면 유익균들이 풍부하게 사는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음식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늘 제안하고자 하는 음식은 바로 수용성 식이섬유다. 식이섬유의 중요성은 정말 많은 곳에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변비가 없어 괜찮다”며, 식이섬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지만 식이섬유는 단순히 장의 움직임을 개선해주는 성분이 아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 섭취를 통해 당뇨, 고혈압, 염증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사진 pexels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 섭취를 통해 당뇨, 고혈압, 염증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사진 pexels

식이섬유는 보통 수용성‧불용성으로 구분한다. 물에 들어갔을 때 물을 머금어 젤처럼 팽창될 수 있는 식이섬유를 수용성 식이섬유, 물에 의해서 팽창되지 않으면 (녹지 않으면) 불용성 식이섬유다. 그런데 식이섬유에는 물에 용해되는 특성 외에도 정말 중요한 특성이 따로 있다. 장내세균에 의해 발효되는 정도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대체로 장내세균에 의해 발효가 잘되지만, 불용성 식이섬유는 대체로 굉장히 제한적으로 발효된다. 식이섬유의 발효 정도가 중요한 이유는 장내세균총의 유익균이 수용성 식이섬유를 발효했을때 만들어지는 대사물, ‘단쇄지방산(Short chain fatty acid, SCFA)’ 때문이다.

단쇄지방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앞서 말했던 ‘장 누수’와 이로 인한 세균 독소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단쇄지방산이 대장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돼 튼튼한 장벽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의 염증 조절에도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단쇄지방산이 장내 환경에 영향을 줘 염증을 줄인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염증성 장 질환이나 대장암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보고들이 있다. 또한, 당뇨 환자들의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여럿 보고된 적 있다. 체중 감량 및 적정 체중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고도 알려져 있으니, 수용성 식이섬유의 중요성은 수차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그린빈, 베리류 등의 채소와 과일, 버섯류와 해조류 등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 pixabay

수용성 식이섬유는 그린빈, 베리류 등의 채소와 과일, 버섯류와 해조류 등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 pixabay

그럼 어떤 수용성 식이섬유를 먹어야 할까? 추천하는 수용성 식이섬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그룹을 소개해보겠다. 첫 번째는 이눌린(땅속줄기나 알뿌리 등에 들어있는 다당류의 일종)이 많이 포함된 치커리‧양파‧아스파라거스‧마늘‧파 등이다. 두 번째는 펙틴(과일에 많이 들어있는 다당류의 일종)이 많은 채소와 과일이다. 당근이나 그린빈, 베리류의 과일이 있다. 세 번째는 베타글루칸(버섯류나 곡류에 있는 다당류의 일종)이 많은 버섯류와 해조류다. 밀과 보리 같은 곡류에도 베타글루칸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밀과 보리와 같은 곡류의 경우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다가, 글루텐이 있어 염증이나 혈당 조절, 체중 관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알고 나면, ‘식이섬유’를 단순히 배변을 돕는 음식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우리 몸의 장내세균총 중에서 유익균이 우세하도록 유지해주는 ‘유익균의 먹이’다. 또 유익균에 의해 대사되어 단쇄지방산을 생산해 튼튼한 장벽을 유지하고, 나아가 우리 몸의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건강한 수용성 식이섬유의 공급을 점차 늘려야 하는 이유다. 매일매일의 건강한 식습관이 당뇨 없이, 고혈압 없이, 또 염증 질환 없이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최지영 피부과 전문의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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