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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주 의원직? 유지될 것"…10분 회의뿐, 윤리특위 실체

중앙일보

입력

성비위 의혹을 받는 박완주 의원의 모습. 박 의원은 사실 관계를 강력히 부인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박 의원의 당적을 제명하고 윤리특위 제소를 준비 중이다. 임현동 기자

성비위 의혹을 받는 박완주 의원의 모습. 박 의원은 사실 관계를 강력히 부인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박 의원의 당적을 제명하고 윤리특위 제소를 준비 중이다. 임현동 기자

“제대로 작동된 적이 없어, 또 제소만 하고 끝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의혹에 대해 답답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박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16일 의원총회에서 박 의원을 당에서 제명한 데 이어 의원직 박탈까지 추진해 6·1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하지만 앞선 류 의원의 말처럼 박 의원에 대한 ‘윤리특위 절차’는 상징적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을 징계하게 돼 있는 윤리특위엔 이미 수년째 ‘논의 중’인 징계안이 수두룩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윤리특위 위원 수는 교섭단체의 의석수 비율대로 배분한다.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원치 않으면 어떠한 진전도 보기 어려운 형태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월 28일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등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국회는 윤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 [뉴스1]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월 28일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등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국회는 윤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 [뉴스1]

제소만 할 뿐, 결론 없는 윤리특위

국회 윤리특위의 실상은 윤리특위 홈페이지만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회의록을 보면 윤리특위가 국회의원 제명을 논의한 가장 마지막 회의는 지난 1월에 열렸다. 2년 전인 2020년 9월과 10월, 그리고 지난해 6월 징계안이 접수된 무소속 윤미향, 국민의힘 박덕흠, 무소속 이상직 전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안건이었다.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세 의원에 대한 제명 의견을 냈지만, 당시 회의는 공전했다.

해당 회의록 마지막 부분엔 ‘11시 21분 비공개회의 개시’ ‘11시 31분 비공개회의 종료’라고 적혀있다. 이후 김진표 윤리특위위원장이 “오늘 회의는 산회를 선포하겠습니다”라며 마무리한다. 단 10분간의 비공개회의 끝에 아무런 결론도 내지 않은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국민의힘 전 윤리특위 소속 의원은 “기소도 되지 않은 박덕흠 의원을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의원이나 이상직 전 의원과 비교해선 안되기 때문에 박 의원을 뺀 나머지 두 사람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윤미향 사태’를 공격에 이용하려고 제명을 미룬 것”이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난 12일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 전 의원을 제외한 윤미향·박덕흠 의원은 모두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에 대한 윤리특위 제소도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보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한 윤리특위 위원은 “민주당에서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결론을 미룰 것”이라며 “결국 제소는 지방선거 면피용 아니겠냐”고 했다. 설령 박 의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지라도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의원직 상실’이란 국회의 불문율이 적용돼 박 의원이 남은 약 2년의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높다. 박 의원이 비위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 중인 것도 변수다.

윤리특위 자문위는 만장일치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사진, 왼쪽)에 대한 제명안을 윤리특위에 건의했지만, 윤리특위에선 어떤 결론도 내지 않았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에 복당했다. [뉴스1]

윤리특위 자문위는 만장일치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사진, 왼쪽)에 대한 제명안을 윤리특위에 건의했지만, 윤리특위에선 어떤 결론도 내지 않았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에 복당했다. [뉴스1]

소위원회 구성도 안 돼, 의원 이름 대신 '△△△' 

민주당이 윤리특위 제소를 하더라도 소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물리적으로 회의가 열릴 수도 없다. 지난 6일 윤리특위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소위원회 구성 파일을 열어보면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엔 ’△△△‘이란 기호만 반복해 등장한다. 국회 관계자는 “소위 위원 배정이 아직 안 된 상황”이라고 했다. "윤리특위 위원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장에 출마해 당분간 윤리특위에서 민감한 현안이 논의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1991년 첫 구성된 윤리특위가 의원직 제명을 의결해 본회의 투표에 부친 건 2011년과 2015년 강용석 전 의원과 심학봉 전 의원의 사례가 유일하다. 성폭행 의혹(이후 무혐의 처분)이 제기됐던 심 전 의원은 본회의 투표 전 자진 사퇴를 했고,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을 했던 강 전 의원은 본회의에서 제명안이 부결돼 의원직을 유지했다. 실제 표결을 거친 국회의원 제명 사례는 윤리특위가 없었던 1979년 당시 뉴욕타임스에 박정희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인터뷰를 했던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유일하다.국회 윤리특위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2일 박지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성비위 의혹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2일 박지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성비위 의혹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동료로 함께 일했던 의원에게 다른 의원의 징계를 맡긴 구조 자체가 문제 아니겠냐”며 “대한민국의 국회는 의원 개개인에겐 너무 관대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윤리특위 자체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리특위 위원장에 외부인을 임명하거나, 자문위 의견에 강제성을 두자는 것으로, 류 의원은 “국회 의원들의 여러 성비위 의혹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윤리특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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