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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소외된 유권자들과 포퓰리즘의 집단의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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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지난 4월 2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프랑스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20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마크롱은 결선투표에서 58.55%를 얻어 41.45%를 얻은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를 17%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은 르펜에 겨우 4.7%포인트만을 더 얻었다. 2017년 대선 결선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당시 마크롱은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린 르펜에게 32.2%포인트라는 큰 표차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원래 프랑스에서 극우는 소수의 정치집단에 불과했다. 극우를 대표하던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육군장교 출신으로 공산주의를 적대시하고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이민 제한을 주장하고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을 자극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대선에 5번 출마했다. 1974년 대선에서 0.75% 득표로 시작하여 마지막 2007년에 10.4%를 얻은 소수파 정치지도자였다.

극우 정치 약진한 프랑스 대선
포퓰리스트, 소외집단 선동 위험
새 정부 소외집단의 아픔 돌봐야
합의정치 통한 민주주의 복원 기대

어떻게 자유와 진보의 상징인 프랑스에서 극우가 약진하는 정치현상이 등장했나? 이는 그동안 이념으로만 나뉘어진 기존 정당구조에서 소외되었다고 믿는 유권자들을 선동하여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나 영국이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자동화, 노조의 쇠락 등이 노동자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믿는 일련의 소외된 유권자들이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를 모두 불신하고 극우의 국가 포퓰리즘으로 선회하게 된 까닭이다.

전 세계 지성은 민주주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 지속되었던 평화로운 국제질서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리아 난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흑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 등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포퓰리스트들은 소외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불행이 자신이 초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집단이나 사회제도의 탓이라고 부추긴다. 심리학에서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려 안정을 찾는 것을 말한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종종 이런 심리기제를 이용하여 선동을 일삼는다. 히틀러가 독일인을 선동하여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본이 관동대지진때 조선인을 학살한 것이 극단적인 예다.

21세기 들어 획기적인 사회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폭된다. 닥쳐오는 삶의 어려움을 기존 정당이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소외된 유권자들은 포퓰리즘 정치가의 선동에 쉽게 빠지게 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와 같은 적대세력을 만들어내 삶의 어려움이 이들 때문이라고 공격한다. SNS나 유튜브와 같은 매체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포퓰리스트들은 이런 매체를 활용해 소외된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집단의식을 강화한다. 언론도 이들 못지않게 편가르기에 앞장선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며 그들의 논리나 의견에는 귀를 막고 자신들의 논리만 확대재생산하는 집단최면으로 지지자들을 몰고 간다. 이런 집단의식은 종종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매도하고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모든 사안을 상대편의 음모라고 부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 정치에도 소위 태극기부대와 문빠 등과 같은 극단적 정치집단이 기승을 부린다. 이들로 인해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한 중도의 합리적인 태도는 쉽게 배신자나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한다. 이제 정치인들이 세대, 계층, 젠더, 지역, 소득 등에 있어서 피해의식에 빠진 소외집단들을 자극하여 편가르기하는 것을 멈추고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살펴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윤석열 정부가 끝나는 2027년이 되기 전에 종식시켜야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레비츠키와 지블랫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들은 최근의 민주주의 붕괴는 제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상식과 규범을 무시하는 정치운영 태도가 문제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호 관용과 자제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행태에 대해 “똑같이 지저분하게 싸우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정당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트럼프보다 더 위험한 포퓰리스트들이 출현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오히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예의를 존중하는 정당간의 합의의 정치를 다시 일구어내야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소외된 집단들을 되돌아보고 합의의 정치를 위해 끝없이 노력하길 바란다. 포퓰리즘으로 극단적 지지집단만을 선동하여 갈라치기하는 비민주적 정치 행태를 불식시키는데 앞장 서야 성공한 윤석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