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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새 정부 교육정책, 자사고·외고 폐지부터 손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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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

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

윤석열 정부가 국민 앞에 제시한 110대 국정과제에 ‘다양한 학교 유형을 마련하는 고교 체제 개편 검토’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러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자사고·외고 일괄 폐지 정책을 윤 정부가 재검토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자사고·외고 등의 일괄 폐지’ 정책은 큰 논란을 겪었다. 법정 다툼 끝에 지난해부터 여러 자사고에 대한 교육 당국의 지정 취소 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특성화 중학교들에 대한 지정취소 처분도 연이어 취소됐다.

학생들 능력·적성 제대로 키워야
모든 일반고를 특목고로 육성을

법원은 당시 문 정부 측의 지정 취소 과정의 절차가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엇보다 정책에 대한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나뉜 상황에서 문 정부가 성급하고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패소했다고 볼 수 있다.

장기간의 법정 다툼으로 인한 행정력과 예산 낭비, 학교 현장의 혼란을 비롯해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돌아갈 교육적 피해가 컸다. 이런 부작용을 고려하면, 새 정부는 이제 자사고·외고 등의 일괄 폐지 정책을 중단하고 고교 체제에 대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은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오랜 찬반 논쟁과 닿아 있다. 평준화 옹호론자는 자사고·외고 등으로 인해 고교 서열화 및 일반고 황폐화 같은 교육 불평등이 초래된다고 비판해왔다. 학습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반면 평준화 반대론자는 평준화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선택할 수 없게 하므로 교육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해왔다. 품질 높은 교육을 제공해 학습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국가가 공교육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형평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가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자사고·외고가 입시 명문고로 인식되면서 일반고가 열등한 학교로 비친 측면도 있다. 평준화 제도에서는 학교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문제를 포함해서 적성과 능력이 다른 학생들 각각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타당한 면이 있다. 해외 우수 고교에 대응할 경쟁력 있는 자사고 등을 장려할 필요가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형평성과 수월성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의 형평성과 수월성을 바라보는 기존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학생을 동일한 내용과 수준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시켜야만 형평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들이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 기회 균등의 실현이라는 시각으로 형평성의 관점을 넓혀야 한다.

수월성 교육도 엘리트 교육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반드시 학생의 능력과 수준에 따라 학교를 분리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모든 일반고의 특목고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한 지역에 있는 일반고를 다양한 특성을 갖춘 학교로 재구조화하고 학생들이 각자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여기서 학교의 노력과 특성이 아닌 입학성적과 같은 단순한 선발기준에 따른 고교 서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적성에 맞는 학교에 누구나 입학할 수 있도록 지역에 충분히 다양한 학교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더 나은 교육을 향한 학교들의 특색있는 경주를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 요구되는 다양한 교육수요에 부응하고 진정한 의미의 교육기회 균등을 실현할 수 있는 고교체제로 개선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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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단국대 교직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