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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러시아 정부에 3조원 자회사 매각…‘2루블’만 받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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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만든 라다 스포츠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만든 라다 스포츠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단돈 ‘2루블(약 40원)’.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러시아 내 자회사들을 러시아 정부에 매각하면서 받은 대금이다. 추정 자산가치 22억 유로(약 2조9300억원)를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헐값이지만, 이 계약엔 미래를 감안한 계산이 깔렸다.

16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산업통상부는 “르노그룹의 러시아 자산을 러시아 정부와 모스크바시(市)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협정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르노는 모스크바 자동차 공장 ‘르노 로시야(르노 러시아)’의 지분 100%를 모스크바시에 이전했고, 러시아 현지 자동차 기업 ‘아브토바즈(AvtoVAZ)’의 지분 68%는 러시아 국영 자동차개발연구소 ‘나미(NAMI)’로 넘겼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르노 로시야와 아브토바즈 매각 금액은 각각 1루블”이라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러시아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이후 주요 외국 기업의 러시아 국유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30% 이상) 기업 르노는 지난 3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랑스 의회 연설에서 ‘르노의 러시아 시장 철수’를 호소한 후 제재 동참에 나섰다. 당시 맥도날드·애플·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반러 여론을 의식해 우르르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나서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외국기업 자산을 ‘합법적으로’ 국유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르노는 러시아 정부에 2루블에 넘기면서 향후 6년 이내 아브토바즈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조항을 달아 완전한 국유화를 막았다. 르피가로는 “매각 가격 그대로 다시 매입할 수 있다”고 전했다. 루카 드 메오 르노 CEO는 “어렵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러시아에 있는 직원 4만5000명에 대해 책임지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은 떠나는 서방 기업에 국유화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르노의 새로운 협상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서방 기업이 다시 들어오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은 “우리는 르노 기업의 핵심 능력과 생산 공정, 일자리를 보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르노가 희망하는 대로 6년 안에 러시아 상황이 좋아져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방의 제재 강도 역시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에게 러시아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었다. 르노는 지난해 러시아에서만 약 50만대를 팔았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에 따르면 러시아 시장은 르노 매출의 10%(46억 유로·약 6조1356억원)와 영업이익의 50%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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