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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에 불리한 저작권법…이대론 K콘텐트 10년 못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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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K콘텐트 세계로 간다 ③ 

16일 서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AVACI 서울 정기총회 대담엔 AVACI 소속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가운데, 그의 왼쪽은 통역)와 DGK 공동 대표인 민규동(맨왼쪽부터)·윤제균 감독, 김희정 감독이 참석했다. [사진 DGK]

16일 서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AVACI 서울 정기총회 대담엔 AVACI 소속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가운데, 그의 왼쪽은 통역)와 DGK 공동 대표인 민규동(맨왼쪽부터)·윤제균 감독, 김희정 감독이 참석했다. [사진 DGK]

“지난해 말 미국 아카데미영화박물관 개관식에 초청돼 다녀왔는데, 할리우드 배우·제작자·투자자를 막론하고 K콘텐트에 대한 관심이 상상 이상으로 높더군요.” 16일 만난 윤제균(53) 감독 말이다. 그는 영화 ‘두사부일체’(2001)로 데뷔해, 두 편의 천만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과 개봉 예정작 ‘영웅’까지 7편의 영화를 각본·연출했다. 또 ‘공조’(2017), ‘담보’(2020) 등 20편 넘는 상업영화를 기획·제작했다.

최근엔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린다 옵스트(‘인터스텔라’)와 손잡고 K팝 소재 글로벌 영화에 연출로 합류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그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인 시대가 돼 ‘진출’이란 말은 어색하다. 미국 시스템을 경험할 좋은 기회”라며 “‘기생충’(2019) 때 봉준호 감독 말처럼 ‘1인치 자막’에 대한 선입견만 깨면 너무나 많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영어권 시청자·관객이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K콘텐트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능력 있는 인재가 유입되지 않으면 지금의 K콘텐트는 10년도 못 간다”고 강조했다.

윤제균 감독

윤제균 감독

3년 전 윤 감독이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해외 저작권료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유럽·남미 감독·작가들은 다른 나라에서 자기 작품이 상영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는데, 우리는 안 받는다. 알아보니 해외에선 창작자 저작권을 관리하는 AVACI(시청각물 창작자 국제연맹), CISAC(국제 저작자 작곡자 연맹) 같은 단체가 챙기더라”라며 “한국에선 감독·작가가 제작사와 계약할 때 모든 저작권을 양도하고, 제작사는 이를 투자사와 공동 소유한다. 반면 유럽·남미에선 영화를 방송 또는 상영하는 플랫폼 기업이 감독·작가에게 일정 부분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차이’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공동대표인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올해 글로벌 저작권 단체 AVACI 정기총회를 서울에 유치한 배경이다. 박찬욱·봉준호·최동훈·이준익·황동혁 등 영화감독 400여 명이 소속된 DGK는 세계 각지에서 온 영화감독 및 저작권법 관계자와 지난 11일부터(20일까지) 서울 일대에서 세미나·포럼 등을 열고 있다. 16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포럼 ‘대담한 영화감독들: 국경을 넘어 영상저작자의 기본권을 말하다’에서 AVACI를 대표한 아르헨티나 감독 겸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는 “영상산업에서 크게 자리매김한 한국에 공정한 보상에 관한 저작권법이 없다는 게 놀랍다”고 지적했다.

현행 저작권법 제100조 1항은 “영화 제작에 협력한 모든 사람의 저작재산권은 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돼 있다. DGK는 한국 영상물이 해외 상영 때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저작권법에도 창작자가 공정하게 보상받을 권리가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DGK는 지난해부터 저작권법 개정 캠페인과 함께, 직접 저작권료 신탁 관리 단체 역할을 준비 중이다.

말도나도 감독과 전날(15일) 국회를 찾아 의원들을 만났다는 윤 감독은 “이번 총회에 아르헨티나·콜롬비아 사람들까지 온 이유는 간단하다. K콘텐트를 전 세계가 틀다 보니, 그쪽 나라에 (저작권료 신탁 단체를 통해) 한국 감독·작가한테 줘야 할 돈이 엄청나게 쌓였다. 그런데 송금할 데가 없어 못 주고 있다는 거다. K팝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잘 챙기는 것과 큰 차이”라며 “전 세계에 콘텐트로 할리우드와 맞붙을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고 자부하는데, 창작자로서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극장 관객 수에 따라 수익배당금을 받는 기존 인센티브 방식은, 감독마다 협상력에 차이가 크고 OTT 등 온라인 상영 시장이 급부상한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 해외에선 저작권료 신탁 단체가 플랫폼에서 징수한 저작권료에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모아 생계가 어려운 창작자들을 돕는 데 쓰기도 한다. DGK도 비슷한 구상을 한다. 윤 감독은 “20년 전 제가 쓰고 연출한 ‘두사부일체’든 ‘색즉시공’이든, 케이블에서 몇 번 재방송해도 저작권료 한 푼 받은 적 없다”며 “방송사는 인기 신작을 틀 때 판권을 가진 투자사에 10억원을 주고 방영권을 획득해, (영화 앞뒤) 광고비로 20억원 이상 벌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DGK 소속 감독 평균 연봉이 2000만원이 안 된다”며 “영화 한 편을 위해 시나리오를 몇 년씩 고치고, 연출에 많은 걸 쏟아부은 감독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건 기운 빠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 영화가 이달에 유럽에서 몇 번, 아시아에선 몇 번 방송됐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고, 상영될 때 다만 얼마라도 통장에 들어오면 더 자극을 받아 의욕이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 “저작권법이 개정돼, K콘텐트를 이끌어갈 20·30대 젊은 작가·감독들이 한 작품 열심히 잘 만들면 ‘벚꽃 연금’(가수 장범준이 곡 ‘벚꽃엔딩’으로 연금처럼 매년 음악저작권료를 받는 데서 나온 말)처럼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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