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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감독 윤제균 "공정한 보상 있어야 인재 유입…감독도 '벚꽃연금' 가능해지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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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이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주최로 AVACI(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 정기 총회 중 대담이 열린 5월 16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사진 DGK]

윤제균 감독이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주최로 AVACI(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 정기 총회 중 대담이 열린 5월 16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사진 DGK]

“지난해 말 미국 아카데미영화박물관 개관식에 초청돼 다녀왔는데 할리우드 배우‧제작자‧투자자를 막론하고 K콘텐트에 대한 관심이 상상 이상으로 높더군요.”
16일 만난 윤제균(53) 감독의 말이다. 그는 충무로의 잔뼈 굵은 감독이자 제작자다. 영화 ‘두사부일체’(2001)로 데뷔해 두 편의 천만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 개봉 예정작 ‘영웅’까지 7편의 영화를 각본‧연출했고, ‘공조’(2017)와 ‘담보’(2020) 등 20편 넘는 상업영화를 기획‧제작했다. 최근엔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린다 옵스트(‘인터스텔라’)와 손잡고 K팝 소재 글로벌 영화에 연출로 합류하며 할리우드 진출에 나섰다. 그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인 시대가 돼서 ‘진출’이란 말은 어색하다. 미국 시스템을 경험할 좋은 기회”라며 “‘기생충’(2019) 때 봉준호 감독 말처럼 ‘1인치 자막’에 대한 선입견만 깨면 너무나 많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영어권 시청자‧관객이 경험하고 있다. 한국은 그 선봉장”이라고 말했다.

"K콘텐트, 결국 사람의 일. 인재 없이 10년 못 간다" 

K콘텐트 글로벌 시대를 연 작품으로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을 꼽은 그는 “K콘텐트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능력 있는 인재가 유입되지 않으면 지금의 K콘텐트는 10년도 못 간다”고 강조했다.

배우 이정재가 지난 3월 13일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배우 이정재가 지난 3월 13일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한 참석자가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

지난 5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한 참석자가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

그런 그가 3년 전 크게 충격받은 일이 있으니 바로 해외 저작권료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유럽이나 남미 감독‧작가들은 다른 나라에서 자기 작품이 상영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는데 우리나라는 안 받는다. 알아보니 해외에선 창작자 저작권을 관리하는 AVACI(시청각물 창작자 국제연맹), CISAC(국제 저작자 작곡자 연맹) 같은 단체가 챙기고 있더라”면서 “한국에선 감독‧작가가 제작사와 계약할 때 모든 저작권을 양도하고 제작사는 이를 투자사와 공동 소유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유럽‧남미에선 당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방송 또는 상영하는 플랫폼 기업이 감독·작가에게 일정 부분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차이’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올해 글로벌 저작권 단체 AVACI 정기총회를 올해 서울에서 유치하게 된 된 배경이다. 박찬욱‧봉준호‧최동훈‧이준익‧황동혁 등 영화감독 400여명이 소속된 DGK가 주최를 맡아, 아르헨티나‧브라질‧콜롬비아‧프랑스‧인도‧러시아 등에서 온 영화감독 및 저작권법 관계자와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일대에서 세미나‧포럼 등을 열고 있다.

"'기생충'이 '공정한 보상' 못 받아?" 해외서 놀라

지난 2020년 2월 9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기생충'으로 작품상 트로피를 받고 있다. 제작자 곽신애 대표(왼쪽)와 송강호, 조여정 등 배우들도 무대에 올라 축하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020년 2월 9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기생충'으로 작품상 트로피를 받고 있다. 제작자 곽신애 대표(왼쪽)와 송강호, 조여정 등 배우들도 무대에 올라 축하했다. [AP=연합뉴스]

16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대담 ‘대담한 영화감독들: 국경을 넘어 영상저작자의 기본권을 말하다’에선 윤 감독과 DGK 공동대표 민규동 감독, 김희정 감독 등이 대담자로 나섰다. AVACI를 대표해 자리한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겸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는 “영상산업에서 크게 자리매김한 한국에 ‘공정한 보상’에 관한 저작권법이 없다는 게 놀랍다”면서 “왜 ‘기생충’에도 안 내는데 콜롬비아나 아르헨티나·멕시코 영화에 대해 저작권료를 내야 하냐는 평판이 생기면 안 되기에 한국 작가·감독들을 깨우러 왔다”고 이번 서울 총회 취지를 밝혔다.

현행 국내 저작권법 제100조 1항은 “영화 제작에 협력한 모든 사람의 저작재산권은 제작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DGK는 한국 영상물이 해외 상영 시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국내 저작권법에도 창작자가 ‘공정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DGK는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저작권법 개정 캠페인과 함께 직접 저작권료 신탁 관리 단체의 역할을 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런 저작권료 신탁 단체는 유럽 33곳, 남미 18곳에 더해 호주‧뉴질랜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확대되는 추세다.

"K콘텐트 이끌 젊은 창작자 한 작품 잘 만들어 '벚꽃연금' 됐으면"

16일 AVACI 서울 정기총회 대담엔 AVACI 소속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와 DGK 공동 대표인 민규동, 윤제균 감독, 김희정 감독이 참석했다. [사진 DGK]

16일 AVACI 서울 정기총회 대담엔 AVACI 소속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호라시오 말도나도와 DGK 공동 대표인 민규동, 윤제균 감독, 김희정 감독이 참석했다. [사진 DGK]

전날 말도나도 감독과 함께 국회에 가서 의원들과 만났다는 윤 감독은 “이번 총회에 아르헨티나‧콜롬비아 사람들까지 찾아온 이유가 간단하다. ‘K콘텐트를 이렇게 전 세계에서 막 트는데, 그쪽 나라에서 (저작권료 신탁 단체를 통해) 한국 감독‧작가한테 줘야 할 돈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근데 송금받을 데가 없어서 못 주고 있다’는 것이다. K팝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잘 챙기고 있는 것과 큰 차이”라며 “전 세계에서 콘텐트로 할리우드와 맞붙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고 자부하는데 창작자로서 권리조차 주장 못 하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K콘텐트의 세계적 유행이 한국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킨 경제 효과는 천금 같다”면서 “뛰어난 인재가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어내야 1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다”고 했다. 극장 관객 수에 따라 수익배당금을 받는 기존 인센티브 방식은 감독마다 협상력에 차이가 큰데다 OTT 등 온라인 상영 시장이 급부상한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 저작권료 신탁 단체들은 플랫폼에서 징수한 저작권료에서 일정 수수료를 모아 생계가 어려운 창작자들을 돕는 데 쓰기도 한다. DGK도 이와 같은 구상을 하고 있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갓 충무로에 들어왔을 때 10평 반지하에서 신혼생활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20년 전 제가 쓰고 연출한 ‘두사부일체’든, ‘색즉시공’이든 케이블에서 몇 번 재방송돼도 저작권료 한 푼 받은 적 없어요. 방송사는 인기 신작 영화를 틀 때 판권을 가진 투자사에 10억원을 주고 방영권을 획득하면 (영화 앞뒤에 유치한) 광고비로 20억 이상 벌기도 한다더군요.”

윤제균 감독은 "현행 저작권법이 개정돼 젊은 창작자들이 한작품을 잘 만들면 '벚꽃연금'처럼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DGK]

윤제균 감독은 "현행 저작권법이 개정돼 젊은 창작자들이 한작품을 잘 만들면 '벚꽃연금'처럼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DGK]

그는 “DGK 소속 감독이 500명 가까이 되는데 평균 연봉이 2000만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 한 편을 위해 시나리오부터 몇 년을 고치고 연출까지 많은 걸 쏟아붓는데 감독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게 기운 빠지는 일”이라며 “내 영화가 이번 달 유럽에서 몇 번, 아시아에선 몇 번 방송됐다고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한번 상영될 때 다만 얼마라도 통장에 들어오면 더 자극을 받고 의욕이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 “저작권법이 새로 개정돼 K콘텐트를 이끌어갈 20~30대 젊은 작가‧감독들이 한 작품을 열심히 잘 만들면 ‘벚꽃연금’(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대표곡 ‘벚꽃엔딩’이 매년 벚꽃 철마다 유행하며 음악저작권료를 번다는 데서 나온 말)처럼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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