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북 외교관 류현우 "북, 한ㆍ미에는 자존심상 손 안 벌려...국제사회엔 이미 SOS"

중앙일보

입력 2022.05.17 13:46

업데이트 2022.05.17 14:24

"북한은 중국에 이미 도움을 요청한 건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도 SOS 신호를 보낸 겁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존심 상 한ㆍ미 지원은 절대로 안 받을 겁니다."

북한 외무성에서 약 20년을 근무하다 2019년 한국으로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17일 중앙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윤석열 새 정부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반발하는 김정은으로선 자존심 때문에라도 손을 벌리기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실제로 북한은 통일부의 방역 지원 관련 실무 접촉 제안에 이틀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음은 류 전 대사대리와의 일문일답.

지난해 1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CNN 인터뷰하는 모습. CNN 캡처.

지난해 1월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CNN 인터뷰하는 모습. CNN 캡처.

Q.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은.

A. 북한에 있던 시절 결핵이 많았는데, 주민들이 워낙 못 먹고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균이 기하급수적으로 확 퍼졌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대책으로 버드나무 잎을 우려먹으라는 게 말이 되나. 평양의학대학병원에서도 맥주병으로 링거를 제조해서 중환자를 치료한다. 주사기도 변변치 않다. 2년 동안 이어졌던 국경 봉쇄로 주민 대부분도 이미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예민한 상태일 거다.

Q. 발병 원인은 뭐라고 보나.

A. 유입경로는 중국밖에 없다. 공기로도 순식간에 확산되는 오미크론의 특성상 지난달 중국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물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퍼졌을 것이다.

Q. 북한이 외부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나.

A. 2004년 용천역 폭발 사고, 2016년 함북도 북부 큰물(홍수) 피해 등을 돌이켜 보면, 피해 사실을 대내외에 공포하는 것과 동시에 각국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지원을 빨아들이는 활동'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런 선례로 비춰 중국에는 북한이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전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갔을 것이다. 주중 북한 대사가 중국 외교부에 긴급 면담을 요청해서 '당장 급하니 미봉책으로라도 의약품을 달라'고 했을 수 있다. 뉴욕에 있는 유엔 대표부, 제네바 주재 국제기구 등에 파견된 외교관들에게도 '필요한 1차 의약품을 인도적 차원에서 확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19 관련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연 뒤 평양 시내 약국들을 직접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19 관련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연 뒤 평양 시내 약국들을 직접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Q. 북한이 필요로 하는 의료 지원은 무엇인가.

A. 먹는 알약 형태의 치료제를 원하지, 백신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은 평양만 해도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전기 공급이 안 된다. (냉동‧냉장 설비를 갖춰준다 해도)전기로 설비를 못 돌리는데, 백신을 줘봤자 무용지물이다. '맹물'이나 다름 없다.

Q. 주민들에게 '사랑의 불사약'이라고 하며 의약품 보급에 열심인데

A. 군을 동원했다는 데 인민무력부 산하 군의국이 있다.(※북한은 인민무력부→인민무력성→국방성으로 개칭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군량미 등 전략 물자처럼 예비로 쌓아뒀던 의약품을 푸는 거다. 중국에서 들여온 약도 많겠지만, 코로나19 이전 평양, 평안남도 쪽에서 통용되던 약들은 70% 이상이 러시아산, 인도산이었다. 값싼 '카피(복제) 약'이 대부분이었다. 해열제 등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각종 약이 들어왔고, 가격도 일반 약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Q. 북한이 외부 지원을 받을까.

A. 중국, 러시아, 국제기구의 도움만 받을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대북 제재에도 걸리지 않으니까 지금처럼 내부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손을 벌릴 수 있다. 하지만 한ㆍ미 직접 지원을 받을 생각은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기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북한으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자존심상 받지 않고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북한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이 16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노동신문. 뉴스1.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 북한에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이 16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노동신문. 뉴스1.

Q. 주민 통제 수준은.

A. 코로나 사태가 불거진 재작년부터 이미 군과 군, 시와 시 사이 경계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도록 시, 군, 도당 책임비서들이 나서서 통제했다고 한다. 통제와 봉쇄로 생활고도 만만치 않다. 쌀값은 현재도 5300원 수준으로 어길 경우 처벌도 불사하며 무조건 딱 잡고 있다고 들었다. 문제는 다른 부식물, 식재료 가격이 최대 20배까지 뛰었다는 점이다. 쌀값만 안정시킨다고 사람이 살 수 있나. 생활고로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당에 대한 신뢰도가 내려가는 것을 북한 당국으로선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것이다.

Q. 이 와중에도 핵실험을 감행할까.

A. 김정은은 내부가 흔들리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내부를 빨리 안정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핵실험을 통한 결집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외부적으로도 최적기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과 경쟁, 대만 문제 등에 온 정신을 쏟고 북한에는 눈길을 못 돌리는 상황 아닌가. 내가 북한 당국의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핵실험을 해내서 '코로나19 와중에도 성공리에 핵을 완성했다' 등 보도를 통해 '미국, 중국 등 대국만 가질 수 있는 핵을 우리도 가졌다'는 뿌듯함을 주민들 마음에 와 닿도록 할 거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통치 자금을 관리해북한 최고지도자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 실장의 사위다. 지난해 1월 탈북 사실이 알려진 뒤 태영호, 조성길 등에 이은 고위 외교관의 탈북으로 주목 받았다. 지난 10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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