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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도 룸살롱서 女 선택" 갑질 폭로…명예훼손 공방 반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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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어떤 날은 단체로 룸살롱에 몰려갔다. 여직원도 여자를 초이스(선택)해 옆에 앉아야 했다”

지난 2018년 4월 19일 A씨는 페이스북 게시판에 B씨의 직장 내 갑질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B씨가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인재 8명 중 한명으로 소개됐을 무렵이었다. B씨는 A씨가 두 달 동안 근무했던 영상업체 대표였다.

A씨는 대형 항공사 오너 일가의 이른바 ‘갑질’ 논란이 주목받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에서도 이런 행태가 벌어지지만, 문제를 제기해도 대기업에 비해 사회적 관심을 얻지 못해 파급력이 작다는 현실에 대해서도 적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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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폭로’ 對 ‘명예훼손’ 공방 결말은?

A씨의 페이스북 게시판 글을 B씨가 문제 삼으며 고소전으로까지 번졌다. “그런 사실이 없는데 거짓된 내용을 올려 명예를 실추했다”는 게 고소장의 내용이였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음료수를 마시도록 했을 뿐 소주 3병 이상의 술을 마시게 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룸살롱’에 가 유흥 직원을 선택해 동석하도록 한 사실도 없다고 억울해한 것이다.

A씨 역시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제3자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여서 거짓이 아니고, 소위 ‘갑질’을 세상에 알려 스타트업 업계의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노동 환경과 직장문화를 고발하고자 하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비방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1심 벌금 200만원→2심 벌금 100만원→3심은?  

1심 법원은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은 ➀“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했다”와 ➁“룸살롱에서 여직원도 여자와 동석했다”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파도타기’등 다소 강제적 문화가 있었으나 강요한 것은 아니라는 직원들의 진술이 있었고, 당시 여직원이 가라오케 주점에 가 도우미를 동석한 적은 있으나 ‘룸살롱’에서 유흥접객원을 동석한 적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2심에서는 벌금이 절반(100만원)으로 깎였다. 2심에서도 ➀“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는 부분은 일관되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인정됐다. 피해자가 카카오톡에서 “저녁 회식! 술! 금지! 입니다!!!”라고 답장하기도 한 점, A씨가 참석하지 않은 회식도 다수 있었던 점, A씨가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회식의 분위기나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이 고려됐다. 다만 ➁“룸살롱에서 여직원도 여자와 동석했다” 는 부분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을 수는 있어도 대체로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2018년 대법원 판례)”고 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3심인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는 점을 짚었다. “공공의 이익을 공적인 인물, 제도 및 정책 등에 관한 것만을 한정할 것은 아니고,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는 취지다. “사인(私人)이라도 그가 관계하는 사회적 활동의 성질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야 한다”는 지난 2020년 대법원 판결도 언급했다.

1‧2심이 일관되게 사실이 아니라고 본 “➀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는 부분의 판단도 달랐다. 참석자들이 ‘술자리에서 회사에서 만든 동영상에 출연한 유명인을 흉내 내고 비슷하지 않으면 벌주를 마시는 게임을 했다’ ‘피해자가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직원에게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째려보는 등으로 눈치를 줬다’, ‘퇴사한 직원 중 한 명이 동기 중 하나로 거부하기 어려운 술자리 문화를 언급했다’ 고 진술한 점, ‘피고인이 신장질환이 있어 술을 잘 마시지 못했는데도 내키지 않은 술을 마시기도 한 점’등이 고려됐다.

대법원은 이에 “이 사건 게시글의 주된 취지는 ‘피해자가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도록 강권했다’는 것으로 술자리에서 보인 피해자의 행동과 그로 인해 직원들이 느낀 압박감 등에 비춰 보면 이 글은 주요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비록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이라 할지라도 회사 대표가 고압적인 사풍을 조성하는지는 사회적 관심에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며 “소위 ‘직장 갑질’이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에도 존재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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