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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타살 아니다" 당시 수사 경찰 충격 주장,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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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사건이 타살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수사 실무를 책임졌던 경찰에 의해서다.

이른바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된 후 11년 만인 2002년 9월 26일 집 근처 와룡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북대의대에서 열린 법의학감정보고회에서 공개된 우철원군의 유골에 나있는 찍힌 흔적들.송곳등 쇠꼬챙이나 드라이버등으로 찍힌것으로 보인다는 법의학팀이 밝혔다.

경북대의대에서 열린 법의학감정보고회에서 공개된 우철원군의 유골에 나있는 찍힌 흔적들.송곳등 쇠꼬챙이나 드라이버등으로 찍힌것으로 보인다는 법의학팀이 밝혔다.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은 6주간의 조사 끝내 두개골의 상처 등을 바탕으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은 아직 찾지 못했고, 많은 부분이 의문에 휩싸여 있다.

당시 현장 취재기자였던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중심으로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30일 개구리소년 유골이 발견된 대구시 달서구 와룡산 현장에 화환이 놓여 소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있다.

30일 개구리소년 유골이 발견된 대구시 달서구 와룡산 현장에 화환이 놓여 소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있다.

개구리 소년의 부모들이 경북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수습돼 있는 아이들의 유해와 유류품을 살펴보고 있다.

개구리 소년의 부모들이 경북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수습돼 있는 아이들의 유해와 유류품을 살펴보고 있다.

17일 CBS 뉴스쇼에서는 책에 담긴 김 본부장의 주장을 소개했다. 김 본부장은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5명 중 세 명의 두개골에서는 상처가 나왔다. 각각 상처의 수가 달랐다. 또 디귿자와 브이자 상흔 등 다양한 모양이었다. 경찰은 다양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범행 도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당시 법의학팀에서는 생전에 생긴 상처로 사망의 원인으로 보았으나, 김 전 강력과장은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홍수 등으로 밀려온 돌에 찍힌 사후 골절흔이라는 의견이다.

김 전 강력과장은 MBC와 인터뷰에서는 “우철원 군의 경우 25군데 외상 흔적이 있다. 범행 도구도 25개가 돼야 한다. (흔적이) 하나도 같은 형태가 아니다”라며 “경찰뿐 아니라 국과수까지 나서서 범행도구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을 다 뒤졌다. 그런데 상처와 부합하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 전 강력과장은 타살이 아니라 해가 지고 어두워진 와룡산에서 점심을 거른 채 길을 잃은 아이들이 쌀쌀한 3월 날씨에 비까지 맞아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 유족 측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CBS 라디오에 따르면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이다. 해발고도도 300m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다.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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