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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마다 팬 1만명 몰고 다닌다…데뷔 동시 1위 걸그룹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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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선배님과 저희는 달라요. VR(가상현실) 기기만 착용하면 언제든지 ‘직접’ 만날 수 있어요”

[걸그룹 ‘이세돌’ 인터뷰]

6인조 신인 걸그룹 ‘이 세계 아이돌’(이세돌) 멤버 릴파(26세)는 ‘원조 사이버 가수 아담’에 대해 이렇게 똑부러지게 말했다. 주르르·징버거·비챤·고세구·아이네 등 나머지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맞장구를 쳤다. 모두 데뷔 후 첫 언론 인터뷰에 다소 긴장해 부산스러운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짧은 치마를 가리겠다며 무릎 담요를 찾고, 혼자 의상 콘셉트가 달라 불화설이 나오면 어쩌냐며 전전긍긍하는 멤버도 있었다.

중앙일보가 이들을 만난 곳은 사무실이나 카페가 아니다. 메타버스(초월을 의미하는 ‘메타’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 ‘VR챗’에 존재하는 야외 캠핑장이다. 이세돌은 한국의 첫 버추얼(virtual·가상) 걸그룹이다. 이들은 메타 속 존재지만, 데뷔와 동시에 벅스·가온 등 오프라인 음원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메타버스와 K팝을 연결하는 엔터 산업의 새로운 수익 모델 잠재력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생방송에 팬 1만명씩 몰려  

이세돌 데뷔곡 '리와인드'의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 624만회를 기록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이세돌 데뷔곡 '리와인드'의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 624만회를 기록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이세돌의 인기는 현실 아이돌과 견줄 만하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데뷔곡 ‘리와인드(RE:WIND)’는 16일 기준 624만 조회 수를 기록했으며, 멤버들의 채널은 85만명의 구독자를 모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디션 진행부터 연습 과정,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모두 VR챗으로 이뤄졌는데, 녹화된 영상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가상 공간에서 이뤄지는 생방송에는 평균 1만여명이 모인다.

인기 비결에 대해 이세돌 제작자 ‘우왁굳’은 “팬들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한 답변을 내놨다. 이세돌 멤버의 정체성은 ‘진짜 사람’이지만, 아바타 뒤에 가려진 신상정보는 비밀에 부친다. EBS 연습생 ‘펭수’처럼 요즘 유행하는 ‘부캐’와 같은 존재다. 이렇게 ‘본캐’를 숨기면 더 솔직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우왁굳의 설명이다. 멤버들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팬들에게 더욱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본캐’를 숨기면서 가능해진 ‘진짜 소통’ 

버추얼 아이돌 이세돌의 인기 비결은 팬들과의 진솔한 소통 덕분이다.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사진 우왁굳 팬카페]

버추얼 아이돌 이세돌의 인기 비결은 팬들과의 진솔한 소통 덕분이다.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사진 우왁굳 팬카페]

사실 현실 K팝 아이돌의 많은 요소는 ‘가상’ 혹은 ‘가짜’일 때가 많다. 꾸며진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기획사에서 정해준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한다. 과거 현실 세계 아이돌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멤버 릴파는 “아무래도 보여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다이어트 등 외적인 스트레스가 많았고, (대중의 시선 때문에) 온몸에 긴장을 하고 살았다”며 “오프라인에서는 가식적일 때가 종종 있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진솔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김상균 교수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인지 과학 전문가이자 이세돌 세계관에선 ‘상균쿤’으로 활동하는 김 교수는 “신인 아티스트는 마치 로봇처럼 말하는 톤, 얼굴 등을 다 바꾸는 ‘비주얼 세팅’을 거치는데, 그건 그 사람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며“이세돌의 경우 아바타로 활동하고,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만 존재하지만, 자기 자아랑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팬들은 이 솔직한 자아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며 “기성세대는 디지털 속 세상은 가짜이거나 왜곡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메타버스 속에서 아티스트와 팬은 더 진실한 가치로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담·류시아 때와 다른 VR의 현실감  

136만 유튜버 우왁굳은 시청자 참여형 콘텐트를 통해 이세돌 멤버 여섯 명을 선발했다. [사진 우왁굳 팬카페]

136만 유튜버 우왁굳은 시청자 참여형 콘텐트를 통해 이세돌 멤버 여섯 명을 선발했다. [사진 우왁굳 팬카페]

아바타를 앞세워 노래한 ‘얼굴 없는 가수’는 과거에도 있었다. 1990년대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과 류시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향상되고 아티스트와 팬이 만나는 플랫폼의 기능이 달라졌다. 이세돌은 “과거에는 스마트폰 없이 TV로만 시청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존재였는데, (이제) VR 기기를 착용하면, 직접 저희를 만날 수 있고, 생방송을 통해서도 실시간 소통할 수 있다”며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걸맞은 아이돌”이라고 단언했다.

이세돌의 데뷔 과정은 일반 기획사와 출발부터가 다르다. 수익을 내겠다는 목표 없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136만 유튜버인 우왁굳은 평소 구독자 참여형 콘텐트를 자주 제작했는데, 아이돌 제작 프로젝트도 이 중 하나다. 멤버는 오디션에 지원한 구독자 150명 중에서 선발됐다.우왁굳은 멤버 선정 이유로 “첫 번째로 가창력을 봤고, 자연스러운 음색인데, 버추얼 플랫폼에 어울리는 멤버를 골랐다”고 말했다.

계약서·청담동 사무실 없는 가상 속 엔터사

이세돌 멤버들은 메타버스 밖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들은 "버추얼이 곧 현실"이라며 가상 현실을 자신들의 '진짜 세계'로 여기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이세돌 멤버들은 메타버스 밖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들은 "버추얼이 곧 현실"이라며 가상 현실을 자신들의 '진짜 세계'로 여기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당초 일회성이었던 아이돌 프로젝트는 이세돌의 인기가 식지 않아 장기화됐다. 이들이 두 번의 싱글 앨범을 내는데 투자한 금액은 몇천만원 수준이다. 곡과 안무, 스타일링 등은 상당 부분 팬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해결했다. 7년 전속 계약과 같은 법적인 절차도 밟지 않았다. 소속사 왁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청담동이나 성수동이 아닌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 세상에 있다. 멤버들은 메타버스 밖에서는 만난 적조차 없다. 이세돌은 “버추얼이 곧 현실”이라며 가상 현실을 자신들의 ‘진짜 세계’로 여기고 있다.

해외의 경우 버추얼 가수의 성공 사례가 꽤 많다. 영국 밴드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휼렛이 만든 버추얼 밴드 고릴라즈는 2001년 발매한 1집으로 8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고, 미국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도 섰다. 일본에선 보컬 합성 프로그램 ‘보컬로이드’를 활용해 음악 활동을 하는 하츠네 미쿠와 같은 버추얼 가수가 꾸준히 신곡을 내고 공연 활동도 펼친다. 블룸버그 통신은 2020년 글로벌 가상인간 시장 규모를 2조4000억원으로 추산하며 2025년 1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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