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소신도 버려졌다, 강성 당원이 장악한 민주 '국회의장 선거'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2.05.17 05:00

업데이트 2022.05.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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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는 24일 민주당 국회의장 경선에 도전하는 김진표 의원(왼쪽)과 조정식 의원. 김 의원이 조 의원보다 16살 많지만 선수는 5선으로 같다. 연합뉴스

오는 24일 민주당 국회의장 경선에 도전하는 김진표 의원(왼쪽)과 조정식 의원. 김 의원이 조 의원보다 16살 많지만 선수는 5선으로 같다. 연합뉴스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16일 민주당 동료 의원들에게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히며 보낸 편지의 일부다. 민주당 5선 의원 중 최연장자인 김 의원은 “불통과 독선의 ‘검찰 공화국’으로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막아내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는 걸 국회의장이 되려는 첫 이유로 적었다. 글 말미엔 “국회가 국민 신뢰를 되찾고, 그 중심이 민주당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그래야만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라고도 했다.

전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한 조정식 의원(5선)도 비슷한 톤이었다. 그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 이제 민주당은 야당이 됐다”며 “전시(戰時)에는 그에 맞는 결기와 전략, 단일대오의 강력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MB(이명박) 정부 시절, ‘MB악법 저지’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의장 단상에 몸을 던졌다”며 자신의 몸싸움 이력도 언급했다. 조 의원 역시 “국회의장이 되더라도 민주당의 일원임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회견 내내 당파성을 강조했다.

과거 국회의장에 출마한 의원들은 출사표에서 ‘여야 협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자신의 속한 정당은 물론, 반대 정당까지 아우르며 국가를 대표하는 게 국회의장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2018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4당 체제, 협치와 통합의 국회”를 언급하고, 2016년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정권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두 의원의 출사표엔 그런 구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권교체 직후라는 상황, 여기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를 밀어붙였던 강성 당원들이 국회의장 선거 개입을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강성 당원 개입하자…중진들, 선명성 경쟁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를 요구하며 24차례 당사 앞 집회를 개최했던 강성 당원 모임 ‘밭갈이운동본부’는 지난달 29일부터 ‘노(No) 수박’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개혁적이고 민주당 정체성이 분명한 국회의장을 선출해야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안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는 관행을 바꿔, 당원 직접 투표를 의장 선출에 반영하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이 서명 운동엔 지금까지 민주당 당원 7만명이 참석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강성 당원 모임 '밭갈이 운동본부'가 주최한 당원 간담회. 왼쪽부터 안민석 의원, 김학현 밭갈이운동본부 대표, 유튜브 방송 '새날' 진행자 권현문 씨, 김두관 의원, 정봉주 전 의원. 오현석 기자.

16일 더불어민주당 강성 당원 모임 '밭갈이 운동본부'가 주최한 당원 간담회. 왼쪽부터 안민석 의원, 김학현 밭갈이운동본부 대표, 유튜브 방송 '새날' 진행자 권현문 씨, 김두관 의원, 정봉주 전 의원. 오현석 기자.

이들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민석·김두관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향후 활동 계획도 공개했다. 김학현 밭갈이운동본부 대표는 “국회의장이 변심하니 민주당 170석 과반 의석이 아무 의미 없었다. 기존 관행대로 뽑으면 개혁 성향 국회의장 선출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당원이 뽑는 식으로 선출 방식을 바꾸라는) 문자를 보내고, 국회의장 후보에게도 찬반을 묻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선 김진표 의원을 겨냥한 비토 발언이 여러차례 나왔다. 정 전 의원은 “과거 ‘이재명을 즉각 제명하라’ 플래카드 들고 서 있는 그 분이 국회의장에 가장 유력하다. 이런 상황을 그냥 손 놓고 보고 있느냐”라고 말하며 안민석 의원(5선)에게 국회의장 출마를 권유했다. 그러자 안 의원은 “여러분이 주신 말씀을 오늘 내로 무겁게 고민하고 결단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학계도 우려…“국회의장 중립성은 의회주의 안전판”

2002년 여야 합의로 개정된 국회법은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는 여야에 치우치지 않는 국회 운영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 당론으로 수년간 추진해왔던 정치개혁안에 따른 법 개정이기도 했다.

민주당 출신으로 해당 법 개정을 주도했던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은 법 시행 직후 탈당하면서 “소속 정당에서 섭섭하다는 말을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지켜왔던 소신이 제도화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민주당 소속 의장 후보들이 앞다퉈 깨는 상황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상·하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장이 의회주의를 지키는 안전판 역할을 해왔는데, 그런 관행이 사라지면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16일 국회의장 출마를 선언한 5선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경록 기자

16일 국회의장 출마를 선언한 5선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경록 기자

한편, 이상민 의원(5선)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 부재와 상실의 시대에 정치를 복원하고 되살리겠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민의에 바탕을 두고 원칙을 중심에 두는 굳건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며 국회의장 출마를 선언했다. 우상호 의원(4선) 역시 이날 오전 라디오 방송에서 “초·재선 의원들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국회의장에) 출마하기로 어제 결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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