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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윤석열 취임사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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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중국 베이징 거리 곳곳에는 이른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강조하는 선전 벽화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자유·평등·공정·법치 등 12개 항목은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차이가 없다. 다만 어느 가치를 더 중시하고 무엇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느냐에 따라 체제가 나뉘고, 같은 나라에서도 시대별로 지향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2015년 중국 당국이 배포한 ‘핵심 가치관’ 해설집 가운데 공정 항목에 이런 표현이 있다. “공정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강조하는 것뿐 아니라 결과의 정의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누구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떠올릴 것이다. 평등·공정·정의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가치이기에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문장이라고 여기면서도 너무나 비슷한 언술 구조에 의구심을 가진 기억이 있다. 그 경위야 어찌됐건, 지금 문 전 대통령의 다짐대로 우리 사회가 5년 전에 비해 더 공정해지고 정의로워졌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명문(名文)이라고 찬탄받던 문재인 취임사는 어느 순간 말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반면교사가 됐다.

자유주의 선언문 가까운 취임사
진보정권 자유 홀대에 대한 반격
평등·정의와 균형 잃지 말아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경하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현란한 미사여구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게 상례인 역대 취임사와 달랐기 때문이다. 대신 반(反)지성주의와 같은 딱딱한 개념어가 등장하고 자유란 단어를 35차례 반복했다.  ‘자유주의자 윤석열’의 사상 고백에 가까웠는데, 실은 지난해 6월 29일 정치참여 선언 때도 예고편이 있었다. 당시에도 ‘전 검찰총장’ 윤석열은 자유를 22차례 언급했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이자 전제”라고도 했다. 진보진영 집권 기간에 평등과 정의가 강조되고 자유의 가치가 홀대받는 현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 마련한 헌법 개정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우려 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하여 자유주의자가 됐을까. 힌트는 스스로 공개한 독서편력에서 찾을 수 있다. 부친으로부터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에 감명한 나머지 지금도 그의 책들을 틈틈이 꺼내 본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고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프리드먼의 철학은 대학 시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졌던 윤석열 동년배들의 정신세계와는 대척점에 있다. 1960년생 윤 대통령은 동세대 혹은 몇 년 후배뻘인 86세대와는 학창시절부터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그들이 한국 정치의 주류로 편입된 뒤 보인 행태에 대한 윤석열 식의 비판적 표현이 이번 취임사에 직접 써 넣었다는 ‘반지성주의’였을 것이다.

기존의 취임사 문법에 익숙한 국민이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가슴 울리는 감동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유주의 선언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희석돼 가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다시 일깨웠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어쩌면 그것이 미사여구로 치장된 지키지 못할 약속보다는 훨씬 나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너무나 소신이 강한 게 우려스럽다. 자유방임으로 흐를 수 있는 밀턴 류의 철학 역시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란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내게 자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침해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것이 자유주의의 원점이다. 대통령은 반대 진영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유뿐 아니라 평등과 정의를 조화시켜야 하고, 성장과 복지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반지성주의다. 대통령이 자유주의 전사(戰士)가 돼서도 안 되고, 이데올로그가 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