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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최고 대변인’의 마지막 브리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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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지난 13일(현지시간)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고별 브리핑에는 평소보다 많은 기자가 참석했다. 폭스뉴스 베테랑 앵커였던 크리스 월러스가 “내가 본 최고의 대변인”이라 평했던 그의 마지막을 직접 보려는 이들이었다.

지난해 임명될 때만 해도 딱 1년만 하겠다던 그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놓아주지 않아 조금씩 미뤄지던 게 16개월이나 흘렀다. 그동안 한 브리핑이 총 224회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근무일의 91%를 기자들 앞에 선 셈이다. 이날 우연히 옆자리에서 만난 사키 대변인의 남편 그레고리 메쳐는 “인제야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겠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보통 한 시간 남짓 하는 브리핑은 5~10분 정도의 짧은 모두발언으로 시작한다. 나머지는 전부 기자들과 질의응답인데, 이 과정이 백악관 유튜브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브리핑 후 카메라 끄고 따로 백브리핑을 하는 경우는 없다.

마지막 브리핑을 마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색인이 잔뜩 된 두툼한 갈색 폴더를 들고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지막 브리핑을 마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색인이 잔뜩 된 두툼한 갈색 폴더를 들고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사키는 분야를 넘나드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고, 공격적인 기자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었다. 브리핑 때마다 가슴에 안고 들어오는 두툼한 갈색 폴더가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호기심에 가끔 들여다보면 폴더 속 문서에는 수험생 노트처럼 형광펜 자국이 가득했다. 브리핑 앞뒤로 한 시간 정도씩은 그와 면담을 잡기 힘들다. 스태프들과 준비 회의, 정리 회의를 하느라 그런 건데, 그 결과물이 오롯이 폴더 안에 들어가고, 그의 답변으로 반영됐다.

한국의 청와대 브리핑에선 이런 자연스러운 질의응답 장면을 보기 힘들었다. 청와대뿐 아니라 부처 브리핑에서도 대변인이 정해진 원고를 읽는 모습만 방송 전파를 탈 뿐이다. 그나마도 심각한 내용을 몇 번이고 틀려 다시 읽다 혼자 웃음을 터뜨려 논란이 된 이도 있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실에선 소통을 위한 ‘백악관 모델’이 자주 언급된다. ‘구중궁궐’에서 벗어나겠다며 백악관 따라 하기에 나선 건데, 대변인실 역시 그런 변화에 준비돼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엔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사라진 채 ‘관계자’ 호칭 뒤로 숨은 모습이다.

이날 사키 대변인은 후임에 조언해달라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첫째, 대통령에게 자주 질문하라. 이는 대변인의 특권이다. 그래야 브리핑룸에 들어가기 전 잘 무장할 수 있다. 둘째, 정책팀을 더 괴롭혀라. 더 많이 공부해야 제대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기자들에게 모든 맥락과 디테일까지 다 전해라. 안 그러면 소셜미디어 시대에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박제될 수 있다. 국민에게 다가선 브리핑을 하고자 하는 한국의 대변인들도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