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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암 정복, 한·미 정상회담 의제에 오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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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전 세계적으로 암 검진율을 낮춰 조기 진단의 기회를 놓치게 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암을 비롯한 주요 질환 대응의 우선순위를 검토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보건 의료 정책을 재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캔서 문샷’(Cancer Moonshot)이라는 암 정복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암 검진뿐 아니라 새로운 항암 면역치료제, 희귀 난치암치료제, 암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 투자를 확대하고, 금연을 비롯한 암 예방과 검진 사업에 초당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통해 향후 25년간 미국인의 암 사망률을 최소 50% 낮추고, 암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암에 각별한 관심
한·미 공조해 인류에 희망 줬으면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부통령 시절에 캔서 문샷 암 정복 프로젝트를 선도했었는데, 문샷이란 명칭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에 따라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것처럼 암 정복을 실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왜 암 정복에 열정을 쏟는 것일까. 델라웨어 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장남을 2015년 뇌종양으로 잃은 개인적인 아픔이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암이 전 세계에서 매년 1000만명, 미국에서만 60만명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인류에게 공포의 질병이란 사실이 더 큰 영향을 줬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매년 25만명이 암에 걸리고 8만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오는 21일 열린다.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의 국제정치 이슈들이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긴박감 넘치는 의제에 덧붙여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한·미 양국의 협력을 주요 의제로 채택한다면 정상회담의 격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암 정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고려할 때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협력을 통한 암 정복을 선언한다면 양국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고, 한국인들에게도 암 극복에 새로운 희망 신호를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암은 유전적 특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 차원의 연구보다는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가급적 대규모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더구나 나라마다 흔하게 발생하는 암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희귀암에서는 국제 협력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 표준화된 방법으로 각국에 흔한 암의 분자적 특성을 광범위하게 규명한 데이터에 대한 공동분석과 기초 임상에 걸친 국제협력 연구들이 2016년부터 당시 바이든 부통령이 주창해왔던 내용이다. 이와 같은 국제적인 자원 공유가 이뤄진다면 각 암 환자의 유전적 특질에 맞는 맞춤형 치료도 확대될 것이고 암 극복의 희망은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의 암 치료 성적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의 암 치료는 외국에서 개발한 의료기기와 항암제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항암제 시장은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그중에서 80%는 다국적 제약사가 점유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 연구는 우리나라 항암 신약 개발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암 진단치료 기반 기술 개발, 임상시험, 암 관리를 지원·조정하는 ‘암 내각’(Cancer Cabinet)을 만들었다. 이에 상응해 한국 정부도 대통령 산하 기구를 설치하길 제안한다. 양국의 두 기구를 활용한 한·미 협의체를 상설하고 암 정복 플랜을 양국이 조율한다면, 한·미가 인류의 암 정복 전선에서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과 신 치료 기술을 통한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암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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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