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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국회도 잠잠하다…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제발 청문회라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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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단체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31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단체 관계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새로 출범했지만 지난 정부서 매듭짓지 못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참사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정부와 국회는 잠잠하다.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활동은 일단 연장됐지만,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옥시레킷벤키저·애경산업 측 입장은 변함이 없다.

참사 피해자들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다. 조정위가 최대 9240억원의 최종 조정안을 내놨지만, 옥시·애경 측 거부로 사실상 조정이 무산됐다. 그러자 '가습기 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단체'(가피단) 등은 7개 기업과 함께 4월 말까지였던 조정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고, 지난 6일 조정위가 이를 수용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조정위 활동기한, 새 조정안의 방향 등이 미정인 데다 옥시·애경 측의 조정안 거부로 동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조정위는 기업 측이 요구하는 '종국성' 확보를 위해 정부·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법 개정 등이 걸려 있어 이 또한 쉽지 않다. 다만 16일 김이수 조정위원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방문해 "여러 대안을 모색하자"고 협의하는 등 물밑 논의만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송기진 가피단 대표는 "조정위 연장 결정 후엔 각 주체가 모두 조용하다. 국회에 가습기 참사 청문회를 요청하려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다른 피해자단체인 '빅팀스'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정위 활동 연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존 조정안을 전면 거부하는 대신, 정부의 직접 피해 배상 등 새로운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빅팀스 측은 "피해자가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으로 국가책임 손해배상을 고시하지 않는다면 조정안을 거부하겠다"라고 밝혔다.

10일 인천시청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시민단체 회원 등이 옥시, 애경 두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인천시청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시민단체 회원 등이 옥시, 애경 두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이들은 시민단체와 연대해 전국적인 옥시·애경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매주 지역별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 등이 기자회견이나 캠페인을 진행하는 식이다. 10여년 간 투병 끝에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배구선수 출신 피해자 안은주씨에 대한 추모도 겸하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불매운동은 무기한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옥시와 애경에선 아무 피드백이 없고 새 정부에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이들 기업을 압박할 방법들을 따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진 신임 장관이 업무를 시작한 환경부에선 뚜렷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선 가습기 참사에 대한 추가 청문회를 열자는 제안이 나왔다. 여야 모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2주가 지났어도 청문회 개최는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이후 가습기 청문회 건이 진행됐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등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문제 해결은 다시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사이 피해자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피해자는 "다들 목소리를 열심히 내지만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거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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