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명 '죽음의 코로나' 덮친 北…'치명률 0.004%'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2022.05.16 15:42

업데이트 2022.05.16 21:0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주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주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발열 환자가 120만명을 돌파했다(4월 말부터 누적 기준). 북한 매체들은 16일 "14일 18시부터 15일 18시까지 전국적으로 39만 2920여명의 유열자(발열자)가 새로 발생하고 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하루 신규 발열환자가 40만명에 육박하는 폭증세를 보이며 오미크론 변이가 북한 전역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누적환자 대비 낮은 사망자

북한은 그동안 관영매체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외부 상황을 빠짐없이 전해왔다. 특히 '죽음의 폭풍', '악성 전염병'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코로나19를 치명적인 위협을 가진 질병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북한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0'이라는 걸 대비해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 표현을 동원했다.

조선중앙TV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0월 '죽음의 폭풍-악성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의 방역에 경각심을 강조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조선중앙TV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0월 '죽음의 폭풍-악성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의 방역에 경각심을 강조했다. 조선중앙TV 캡처

그런데 북한이 밝힌 사망자 수는 50명에 불과하다. 북한 매체들이 전한 누적 발열환자는 121만3550여명(15일 18시 기준). 이를 토대로 보면 누적 발열환자 대비 치명률은 약 0.004%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에 속하는 한국의 치명률(0.13%)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수를 축소해서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밝힌 사망자 수를 전세계적 평균 치명률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백신 접종률이 제로(0)에 가깝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북한 주민들이 취약한 면역력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 세계 평균 코로나19 치명률은 약 1.2%에 이른다. 예방접종은 물론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북한의 치명률이 그보다 낮다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셈이다.

방역이 효과를 보려면 심각한 상황을 공개해 주민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게 필수지만, 수치를 있는 그대로 공개할 경우 망가진 보건 인프라 실태를 대내외적으로 인정하는 격이 되는 데서 딜레마가 작용했을 수 있다.

비과학적 공포 경계하는 북

이에 또다른 방법으로 주민들을 계도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과학적인 방역의식 제고가 중요하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악성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적은 비과학적인 공포와 신념부족, 의지박약"이라고 지적했다. 또 약물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과 관련해 "사람들이 악성전염병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하고 치료방법을 잘 알지 못한 데로부터 산생된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들이 방역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15일 전했다. 사진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들의 회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들이 방역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15일 전했다. 사진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들의 회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방역과 치료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홍보물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신문은 "간부들이 주민들 속에 깊이 들어가 전염병에 대한 불안을 가시게 해야 한다"며 "대중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한 편집물을 많이 만들어 널리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코로나 청정국' 등 자국 방역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상황이나 위험성을 부각해오던 매체들이 이제는 이로 인한 주민들의 과잉공포를 수습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셈이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북한 매체들은 그동안 외부의 코로나19 전파 상황을 자세히 다루면서도 치료제나 예방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은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북한 주민들의 공포심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약물남용을 주요 사망원인으로 지목하며 민심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지시에도 의약품 부족 여전

북한 내에서 신규 발열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 기관의 대응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5일 전날에 이어 열린 정치국 비상협의회에서 "(예비의약품 보급에 대한) 비상지시를 하달했는데도 집행이 바로 되지 않고 있다"며 내각과 보건부문의 사업태도와 집행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의 모습. 김 위원장은 이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의약품들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의 모습. 김 위원장은 이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의약품들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이처럼 '최고존엄'의 비상 지시에도 의약품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재차 질책하는 모습 자체가 심각한 의약품 부족을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북·중 간 국경을 봉쇄한 2020년 1월 이후 북한의 의약품 수입은 거의 중단됐다. 화물열차 등을 통해 일부 의약품을 수입했지만, 폭증하는 환자수를 고려하면 적절한 공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현단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약품은 발열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해열제"라면서 "의약품 부족으로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희생자 속출과 이에 따른 민심 악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날 성명을 통해 "북한에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할 위험이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북한이 아직 코로나19 접종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다. WHO는 "북한 정부에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정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오전 11시 코로나 방역 협력과 관련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권영세 통일부 장관 명의의 대북통지문을 김영철 통일전선부 부장에게 보내려 했으나, 북측이 아직 통지문 접수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오후 밝혔다. 이어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마스크·진단도구 등을 제공하고 방역 경험 등 기술협력을 진행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한편 이를 위한 남북간 실무접촉을 제의하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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