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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에게서 전설의 향기가 난다, AT&T 바이런 넬슨 2연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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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 2연패를 이룬 이경훈. [AFP=연합뉴스]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 2연패를 이룬 이경훈. [AFP=연합뉴스]

샘 스니드,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그리고 K.H Lee.

이제 그의 이름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전설들과 함께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니클라우스나 왓슨과 같은 반열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31세의 프로골퍼 이경훈이 주인공이다.

이경훈은 16일 미국 텍사스주 매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파72·7468야드)에서 끝난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910만 달러) 2연패를 이뤄냈다.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7개를 기록하며 9언더파를 기록하는 완벽한 경기를 펼친 끝에 역전 우승했다.합계 26언더파로 경기를 마친 그는 끝까지 추격하던 조던 스피스(미국)를 1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163만8000달러(약 21억원). 지난해 이 대회에서 PGA 투어 통산 첫 승의 감격을 누린 이경훈은 이번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해 대회 2연패와 함께 통산 2승을 거뒀다.

우승과 함께 세계 랭킹도 껑충 뛰었다. 지난주 88위에서 47계단 상승한 4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경훈이 '엘리트 그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50위 권에 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57위 김시우를 추월한 이경훈은 20위 임성재에 이어 한국 선수 중 두 번째로 랭킹이 높은 선수가 됐다.

지난해 첫 우승 당시 출산을 앞둔 부인 유주연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이경훈.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첫 우승 당시 출산을 앞둔 부인 유주연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이경훈. [ 로이터=연합뉴스]

PGA 투어 통산 54승을 기록한 ‘그린의 신사’ 바이런 넬슨(1912~2006)의 업적을 기리는 이 대회에서 이경훈보다 먼저 2연패 이상을 달성한 선수는 3명 뿐이다. 1944년 창설 이후 샘 스니드(1957·58)와 잭 니클라우스(1970·71)가 2연패했고, 톰 왓슨은 3연패(1978·79·80)의 위업을 이뤘다.

한국 선수가 PGA 투어에서 타이틀을 방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경주가 2005년 10월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 10월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지만, 두 대회는 서로 달랐다. PGA 투어에서 통산 2승 이상을 거둔 한국 선수는 최경주(8승)를 필두로 김시우(3승), 양용은·배상문·임성재(이상 2승)에 이어 이경훈이 여섯 번째다.

승부처는 12번 홀(파5)이었다. 선두를 1타 차로 쫓던 이경훈이 242야드를 남기고 4번 아이언으로 친 세컨드 샷이 홀 1.5m 앞에서 멈췄다. 이글로 마무리하며 단독 선두로 뛰어오른 이경훈은 이어진 13번 홀(파4)에서도 4.5m 버디 퍼트틀 성공시키며 승기를 잡았다.

막판 위기도 있었다. 1타 차 선두를 지키던 17번 홀(파3)에서 티샷한 볼이 그린 주변 벙커 턱에 걸쳤다. 벙커에 발을 딛고 시도한 세컨드 샷은 홀 3.5m 앞에서 멈춰섰다. 타수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호흡을 가다듬은 이경훈은 침착하게 퍼트를 성공시키며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반면 뒷 조에서 추격하던 스피스는 같은 홀에서 2.8m 버디 퍼트를 놓쳐 공동 선두로 나설 기회를 놓쳤다.

지난달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이경훈의 캐디로 나선 아내 유주연 씨와 딸 유나 양. [AFP=연합뉴스]

지난달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이경훈의 캐디로 나선 아내 유주연 씨와 딸 유나 양. [AFP=연합뉴스]

이경훈은 지난해 우승 이후 부진의 늪에 빠졌다. 톱 10에 이름을 올린 건 지난해 7월 3M 오픈(공동 6위)이 유일했다. 고심하던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다. 캐디를 교체했고, 지난해 첫 우승 당시 사용했던 일자형 퍼터 대신 이전에 쓰던 투볼 퍼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퍼트에 부담을 느끼던 이경훈은 최종 라운드를 24개의 퍼트로 마무리했다.

이경훈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대회에 출전하고 또 한 번 우승하기까지 과정이 꿈만 같다”면서 “부모님과 아내, (지난해 7월 태어난) 딸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고 밝혔다.

이경훈은 지난 2017년 두 살 연상인 유주연 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이듬해 아내와 동행한 첫 시즌에 1부 승격의 기쁨을 맛봤다. 미국 진출 후 3년 만이었다. 지난해 5월 첫 우승 당시엔 유씨의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예비 아빠’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PGA 투어 진출 이후 6년 만에, 80번째 도전 만에 이룬 값진 우승이었다. 이경훈은 1년 뒤 딸 유나 양(1세)과 부모님 등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한 번 PGA 투어 무대를 평정했다.

통산 2승을 달성한 이경훈은 오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개막하는 올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이제껏 메이저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적이 없는 이경훈에겐 또 하나의 벽을 넘기 위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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