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친구와 만들었다"…전세계인 쓰는 '노란 스마일'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2.05.16 05:00

업데이트 2022.05.16 11:30

노란 원에 웃는 얼굴. 티셔츠·도넛·이모티콘 등 어디에선가 봐 온 익숙한 대상이다. ‘웃는 얼굴’ 모양의 기원은 4500년 전 프랑스 동굴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시대와 지역마다 부르는 말도 달랐다. 하지만 현재 공식적인 이름은 ‘스마일리(Smiley)’다.

니콜라스 루프라니 스마일리컴퍼니 대표 #노란 원에 웃는 얼굴로 창업

1972년 1월1일 신년호 '프랑스-스와' 지에 실린 스마일리 로고.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1972년 1월1일 신년호 '프랑스-스와' 지에 실린 스마일리 로고.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지난 1972년 1월,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스와(Frane-Soir, 프랑스 이브닝)’는 온통 암울한 뉴스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잠깐, 웃어 보세요(Take The Time to Smile)’란 새해 캠페인을 시작하고 1면에 웃는 얼굴 로고를 넣었다. 이 작업을 주도하고 상표권을 등록한 건 신문 기자 프랭클린 루프라니였다.

스마일리를 고안한 프랭클린 루프라니(왼쪽)과 아들 니콜라스 루프라니.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를 고안한 프랭클린 루프라니(왼쪽)과 아들 니콜라스 루프라니.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이후 패션업계에서 일하던 그의 아들 니콜라스 루프라니(51)는 웃는 얼굴에 ‘스마일리’란 브랜드 이름을 붙이고 회사(스마일리컴퍼니)를 세워 패션·음악·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제 매년 6800만개가 넘는 상품이 팔리고, 그 매출액만 7000억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라이선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일리는 나이도 성별도 없어요. 살아남기 위해 매순간 새롭게, 모두를 위한 행복의 상징으로 태어나야하기 때문이죠.”니콜라스 루프라니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50주년을 맞은 스마일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모양도 단순한데 왜 인기가 있을까.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정교하다. 다양한 버전의 디자인과 제품 그래픽, 마케팅, 대중과의 소통 등 뒤에 보이지 않는 작업이 굉장히 치열하다. 결국 남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인기의 비결이다. 우리 비전은 ‘항상 스스로를 재창조하라’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스마일리 조형물. 세계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시청했다.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스마일리 조형물. 세계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시청했다.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의 정체성은 뭔가.
“세상의 공정, 정의를 믿게 하는 긍정성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더 나은 미래에서 살고 싶어한다. 젊은 세대에게 ‘뭐든 함께 변화시킬 수 있다’는 힘을 전하고 싶다.”

스마일리는 1970~8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류 문화에 도전하는 젊음의 상징으로 퍼져나갔다. 찢어진 청바지에 장발로 상징되는 히피 문화가 대표적이다. 특히 세계적인 로큰롤 밴드 ‘토킹 헤즈’ ‘너바나’ ‘블링크-182’ 등의 무대와 앨범 커버에 등장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케이티 페리, 마일리 사이러스 등 음악가와 유명인들이 스마일리가 그려진 의상을 입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스마일리가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하는 미국의 인기 가수 케이티 페리.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가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하는 미국의 인기 가수 케이티 페리.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루프라니와 한국의 인연은 의미심장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에서 쓰이는 스마일 이모티콘을 만든 게 루프라니와 그의 한국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키보드 기호로 ‘:-)’ 와 같은 이모티콘을 처음 만든 건 1982년 스콧 팔만 카네기멜런대 교수였지만 그래픽 형태의 이모티콘은 루프라니가 만들어 1997년 미국 저작권 협회에 등록했다. 이후 2001년 삼성전자·노키아·모토로라 등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에 라이선스를 제공했다.

니콜라스 루프라니와 한국 디자이너들이 만든 입체 스마일리 이모티콘.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니콜라스 루프라니와 한국 디자이너들이 만든 입체 스마일리 이모티콘.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디지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아버지는 로고를 함부로 변형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내겐 스마일리가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졌고 결국 한국 디자이너 친구들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 스마일리에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난 얼굴은 물론 날씨·국가·직업·스포츠 같은 스마일 카테고리도 만들었다. 1999년 약 220개의 이모티콘이 2004년엔 3000개로 불어났다. 이후 애플 등이 자체 이모티콘을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스마일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고 소통하는 글로벌 언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룬 셈이다”  
스마일리와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와 협업한 제품 모습.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와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와 협업한 제품 모습.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는 420개가 넘는 브랜드와 협업중이다. 미국 청바지 브랜드 '리(Lee)'와 던킨 도너츠와 협업한 제품 모습.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는 420개가 넘는 브랜드와 협업중이다. 미국 청바지 브랜드 '리(Lee)'와 던킨 도너츠와 협업한 제품 모습.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스마일리는 2018년 현대백화점과의 연중 캠페인을 시작으로 한국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이후 테라·빈폴스포츠·크록스·질스튜어트 등과 협업 제품을 내놨고, 최근엔 서울 갤러리아백화점에 50주년 기념 매장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 서울에 온 게 1997년이었는데 맙소사, 지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솔직히 50년 전엔 한국전쟁을 빼고는 세계에서 한국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기술(IT)을 비롯해 음악·영화·게임 덕에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됐다. 세계 모든 대도시에 한식당이 있고, 사람들은 K-컬처에 노출돼 있다. ‘문화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정말 중요하다.”
탄생 50주년을 맞아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 세운 스마일리 팝업 스토어. [사진 갤러리아타임월드]

탄생 50주년을 맞아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 세운 스마일리 팝업 스토어. [사진 갤러리아타임월드]

패션은 문화적 영향력이 강한 산업이다. 스마일리는 최근 펜디·몽클레르·모스키노·아르마니 등 럭셔리 브랜드를 비롯해 아디다스·푸마·자라·H&M 등 패션 브랜드와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다. 루프라니는 “담배를 빼고 어떤 브랜드와도 협업할 수 있다”면서도 “Z세대는 스마일리와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패션이 젊음의 중심에 있는 산업이라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오는 6월 H&M과의 컬렉션을 출시하고, 리복·이스트팩 등과도 협업을 논의 중이다.

웃음이나 긍정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맞다. 나조차 사업이 거의 망하고 패션 일을 계속 못 해서 힘든 시기가 있었고 항상 행복하지도 않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행하게 느껴지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매일 일과가 끝나면 하루의 좋았던 순간들, 작지만 달성해 낸 것들에 집중하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밝을 면을 보려고 한다. 사람의 의지는 의외로 강력한 효과가 있다.”

스마일리는 50주년을 앞두고 2020년 ‘미래 긍정(future positive)’이라는 5년짜리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계획이 타격을 받았지만 스마일리를 극복의 상징으로 삼고, 지난 3월 남산의 N서울타워를 포함해 런던·뉴욕·베를린·파리·리우데자네이루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쏘아 올리는 행사를 펼쳤다.

지난 3월21일 서울 남산의 N서울타워에 나타난 스마일리. 유엔이 지정한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전 세계 주요 도시 랜드마크에서 진행한 행사 중 하나다. 일환이었다.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지난 3월21일 서울 남산의 N서울타워에 나타난 스마일리. 유엔이 지정한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전 세계 주요 도시 랜드마크에서 진행한 행사 중 하나다. 일환이었다. [사진 스마일리컴퍼니]

또 다른 50년을 살아내려면.
“경쟁이 치열하고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없는 시대다. 중요한 건 훌륭하고 보람된 일을 하는 ‘의미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NFT(대체불가토큰)와 메타버스 진출, 지속 가능성 캠페인 강화 등이 주요 숙제다. 개인적으론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협업하고 싶은 꿈의 브랜드다. 함께 할 수 있는 환상적인 일이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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