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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지킨 집시법, 용산 못지켜준다…자유 외친 尹 '집회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용산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허용에 대한 사회적 결론이 미뤄지고 있다. 법원의 판단과 경찰의 방침은 엇갈린 상태다. 여전히 집회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보장해야 할지, 대통령의 집무실 주변은 시위 장소로 타당한지 법조계 안팎에서도 이견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자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면서 경찰과 정부, 여권의 판단이 더 복잡해진 형국이다.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 대통령실 출입구(미군기지 13번 게이트)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지난 11일 성소수자 단체가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금지통고 처분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하면서 향후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도 확대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 대통령실 출입구(미군기지 13번 게이트)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지난 11일 성소수자 단체가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무실 100m 이내 집회 금지통고 처분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하면서 향후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도 확대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경찰,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금지하겠다”

당분간 용산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는 경찰의 금지통고 처분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해당 단체의 집행정지 신청, 경찰과의 공방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이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회 금지통고 처분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그러나, 경찰은 즉시 항고와 함께 본안 소송까지 법리 다툼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100m 내 집회와 시위 금지구역인 ‘대통령 관저’의 개념에 대통령의 집무실이 포함된다고 보고 금지통고 처분을 유지할 방침이다.

경찰이 기존 방침을 고수하자 참여연대도 21일로 예정된 국방부와 전쟁기념관 앞 집회에 대한 금지통고가 부당하다며 지난 13일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3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입법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3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입법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관저·집무실 분리되면서 혼선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불거졌다. 청와대 시절엔 관저와 집무실이 한 공간에 있어 집무실도 100m 이내 집회가 제한되는 부수적 효과를 누렸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 100m에서의 집회에 대한 규정은 공백 상태가 된 셈이다.

현행 집시법 제11조는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를 규정하고 있다. 100미터 이내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못 하는 장소로, 국회의사당(1호)과 각급 법원·헌법재판소(2호),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3호) 등을 규정하고 있다. 1, 2호의 경우는 국회와 헌재·법원의 기능을 침해할 우려가 없을 때는 집회 등을 허용해줘야 한다며 집회의 자유를 더 보장하는 단서를 달았다. 반면, 3호엔 그런 단서를 두지 않아 사실상 100m 이내 집회를 더 어렵게 규정하고 있었다. 즉, 과거엔 대통령 집무실(청와대 관저) 주변 집회가 국회의사당이나 법원 주변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됐던 셈이다.

국회·법원 앞보다 집회 더 자유로워져

그러다가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분리되면서,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금지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고 국회의사당과 법원·헌재 주변보다 더 취약한 구조가 됐다. 경찰이 ‘형평’의 논리를 내세우며 대통령 집무실을 관저급으로 보고 집회 금지를 강행하는 이유다.

최근 국회나 법원·헌재 주변의 집회 자유도 더 폭넓게 허용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경찰 측은 “국회나 법원과 달리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관련 업무가 24시간 돌아간다”며 집회 금지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과 여권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소통을 하겠다는 것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며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여당 “집무실도 집회 금지 구역에 추가” 법안 발의

여권에서는 집시법 개정으로 입법 미비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장소를 ‘대통령 관저’에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수정하는 집시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집무실 주변 집회는 기존 청와대와 동일하게 제한하자는 취지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국회 논의를 지켜보고 필요하면 입장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경찰 내부적으로는 법 개정으로 논란이 해결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도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대통령 집무실 주변 집회를 허용해도 현실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구간을 포함하는 공간에서 진행된 무지개행동의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행진은 교통 혼잡을 빚기는 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회원들의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 행진으로 도로가 정체를 빚고 있다.   이날 무지개행동은 용산역을 시작해 대통령 집무실을 거쳐 이태원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뉴스1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 회원들의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 행진으로 도로가 정체를 빚고 있다. 이날 무지개행동은 용산역을 시작해 대통령 집무실을 거쳐 이태원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뉴스1

“경찰·시민단체·경호처 모여 ‘soft-law’ 마련해야”

법 개정에 앞서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대통령 집무의 안녕과 기능을 보호하고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엔 집회 시위를 규제하는 흐름이었는데 지금은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집무 중일 때와 퇴근했을 때, 교통량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집회 양상이 달라져야 한다”며 “경찰과 시민사회, 대통령경호처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된다. 경성 규범(hard-law)이 아닌 연성 규범(soft-law)에 기반해 서로 양해하며 관용하는 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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