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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접경지 활약하는 '대기업 출신' 韓 활동가..."평화에 더 많은 목소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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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611만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79일째인 지난 13일(현지시각),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의 수다.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 인구(4413만명)의 13.8%가 자국을 떠난 것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절반 이상(331만명)은 폴란드로 향했고, 나머지는 루마니아, 러시아, 몰도바 공화국 등으로 흩어졌다. 폴란드가 국제시민단체 구호 활동의 최전선 중 하나가 된 이유다.

폴란드에서는 난민을 돕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희망친구 기아대책(Food for the Hungry·이하 기아대책)’에서 일하고 있는 한두리(39) 인도적지원팀 팀장은 대표적인 한국인 활동가다. 그는 한국에서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10년 넘게  세계 곳곳에서 활동했다. 기근이 발생한 마다가스카르에서 최근까지 식량을 배분하는 등 구호 활동을 했던 한 팀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지난달부터 폴란드 접경 지역인 루블린에 체류하며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등 전선과 달리 폴란드는 인터넷과 전화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이다. 기자는 한 팀장과 SNS와 전화 등으로 현지 사정을 들었다.

한두리 희망친구 기아대책 인도적사업팀장이 폴란드 루블린의 물류창고 앞에서 구호 물자들을 점검하고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한 팀장에게 직접 전달받은 사진. 사진 희망친구 기아대책

한두리 희망친구 기아대책 인도적사업팀장이 폴란드 루블린의 물류창고 앞에서 구호 물자들을 점검하고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한 팀장에게 직접 전달받은 사진. 사진 희망친구 기아대책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지원은 여러 국제구호단체와 활동가들이 협력해 이뤄진다. 한 팀장은 "단체들 간의 협력은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UNOCHA) 주도 하에 분야(클러스터)별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기아대책의 경우 2주에 한 번씩 식량과 생필품 등을 현지에서 조달해 우크라이나 국경 안으로 보내는데, 어떤 물품을 구해 어디로 보낼지는 다른 단체들과 상의해 결정한다. 우크라이나 안으로 들어간 구호 물품은 협력 관계에 있는 현지 활동가들이 필요한 주민들에 분배하는 식이다.

난민 대피소 줄지어 들어선 폴란드 접경지대

폴란드 정부가 운영 중인 난민 대피소의 모습. 기아대책은 해당 대피소에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한다 사진 기아대책

폴란드 정부가 운영 중인 난민 대피소의 모습. 기아대책은 해당 대피소에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한다 사진 기아대책

집을 떠난 난민들을 위한 난민 대피소를 운영하는 단체도 많다. 폴란드 정부와 유엔도 바르샤바 등지에 난민 캠프를 운영하고 있지만, 몰려오는 난민들을 수용할 곳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아대책 역시 지난 3월부터 폴란드 루블린 지역에 가족 대상의 난민 대피소 5곳과 바르샤바 고려인 난민 대피소 1곳을 운영하는 중이다. 월세로 건물을 빌려 난민을 수용하고, 식량과 생필품 등을 지원한다.

다만 접경 지역에 오래 머무는 난민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한 팀장은 “난민 대부분은 국경 근처에 잠깐 있다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면서도 "전쟁이 끝나기 전이지만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UNHCR에 따르면 13일 기준 외국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온 우크라이나인은 169만명이다.

폴란드의 일부 병원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 무료 진료를, 일부 호텔은 무료 숙박을 제공한다고 한다.

“외국인 도움 없이 구호 활동 못해야 하냐”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내로 기아대책의 구호물자를 수송하는 트럭 모습. 사진 기아대책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내로 기아대책의 구호물자를 수송하는 트럭 모습. 사진 기아대책

한 팀장은 정부 지침상 한국인이 우크라이나 내 구호 활동에 투입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는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 있어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입국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는 "구호 물자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모니터링을 위해 직원들이 동행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국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캐나다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며 "외국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구호 활동을 할 수 없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외국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라면서다.

기아대책은 난민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에 가는 게 우리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인도적 사업의 목표는 ‘재난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한 국가의 이익을 넘어, 한 인간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정부가 더 많은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아대책이 폴란드 현지에서 운영 중인 난민 대피소 내의 모습. 사진 기아대책

기아대책이 폴란드 현지에서 운영 중인 난민 대피소 내의 모습. 사진 기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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