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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인세 근본 손본다…해외서 올린 수익, 과세 안하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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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기업이 해외에서 거둬들인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로 물리지 않는 식으로 법인세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해외 현지와 국내에 두 번 세금을 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쌓아놓던 수조원대 유보소득의 국내 유입을 기대해서다. 일부 기업은 해외에만 법인세를 납부하면 돼 세금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같은 내용으로 법인세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현행 과세체계는 ‘거주지주의’다. 원칙적으로 해외 자회사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국내 본사가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일차적으로 세금을 내고, 국내 법인세율이 해외보다 높다면 한국 과세당국이 세금을 추가로 매긴다. 그러다 보니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소득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는 유보소득이 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에 정부는 법인세 과세체계를 ‘원천지주의’로 개선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은 해외에서 거둬들인 소득에 대해 해외에만 법인세를 납부하면 돼 그만큼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법인세 최고세율의 경우 미국은 21%로, 한국(25%)보다 4%포인트 낮다. 영국ㆍ독일ㆍ일본 등 주요국도 한국보다 낮다. 예컨대 거주지주의에서 원천지주의로 제도를 바꾸면 국내에서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대기업의 경우 미국에서 거두는 소득에 대해 4%포인트 만큼의 법인세를 덜 내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크게 세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먼저 기업의 해외유보금 국내 유입을 통한 투자 활성화다. 기술개발을 촉진하거나 고용을 확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국내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앞서 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도 ‘유보소득 배당을 통한 원활한 자금흐름 촉진’이 포함됐다.

해외서 거둔 소득 이중과세 없앤다 

해외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세 부담 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효과도 기대된다. 거주지주의에선 국내 기업이 현지에서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며 해외 기업과 경쟁해야 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해외 다국적기업의 본사를 한국에 유치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원천지주의에선 한국에 본사를 두더라도 해외에서 거둔 소득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 유력 기업이 본사를 한국에 설치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거주지주의에선 홍콩ㆍ일본 등 대신 한국에 본사를 둘 가능성이 아예 없다”며 “원천지주의로 바꾼다고 바로 본사를 유치하거나 국내 투자가 극적으로 늘지는 않겠지만, 원천지주의가 국제 표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사례를 보면 유보금 유입 효과는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재부에 원천지주의로의 제도 개선을 제시했고, 기재부에서 이를 수용하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7~2021년)간 신고된 해외 유보소득은 총 2조7158억원에 달한다. 연평균 5432억원씩 해외 유보소득이 새로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 중 한국에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유보한다고 신고한 금액이다. 해외 유보자금은 신고 의무가 없는 데다, 과세당국이 파악하기도 어려워 실제 유보소득은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투자 활성화, 기업 경쟁력 제고 기대 

실제 해외 자회사에서 본사에 송금하는 돈은 회계상 배당금으로 잡히는데,  2016년~2020년까지 해외 자회사가 거둔 연평균 당기순이익은 72억9500만 달러다.(한국수출입은행 자료) 이 가운데 국내로 들어온 배당금은 절반 정도인 연간 36억6300만 달러다. 해외에서 현지 법인의 필요에 따라 재투자한 금액도 있지만, 연평균 36억2000만 달러(약 4조6000억원)는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는 해외에서 재투자로 쓰인 돈을 제외하고도 상당한 액수가 과세를 피하기 위해 유보돼있을 것이라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거주지주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한국ㆍ아일랜드ㆍ멕시코ㆍ칠레ㆍ이스라엘 등 5개국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관계자는 “원천지주의 개편 전 이미 유보한 소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과세할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자회사 국내 배당에만 적용할지 등 검토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르면 올해 국회에 제출하는 2023년도 세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압도적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대응이 변수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대기업 감세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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