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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도 호소한 '28억 약'…韓건보 '획기적 사건' 벌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수 백지영이 2월 초 희귀병인 한국척수성근위축증(SMA) 환우회와 함께 '희망의 빛'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백지영은 ″환우들을 위해 이 병을 알리려고 동참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가수 백지영이 2월 초 희귀병인 한국척수성근위축증(SMA) 환우회와 함께 '희망의 빛'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백지영은 ″환우들을 위해 이 병을 알리려고 동참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1회 주사에 28억 원짜리 초고가 유전자 치료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전망이다. 28억원 약은 국내 건보 역사상 가장 비싸다. 그래서 이번 적용이 "한국 의료보장 역사에 획기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2일 약제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를 열어 한국노바티스가 신청한 졸겐스마 주사제에 건보를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를 심사해 "급여 적정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건보를 적용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와 건강보험공단이 건보 적용 약값을 얼마로 할지 60일 이내 결정하고, 30일 이내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심의·의결하게 된다. 이르면 7~8월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졸겐스마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에게 주사하는 혁신적 신약이다. 이 병은 SMN1 유전자 결핍 또는 돌연변이로 인해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치명적인 희귀 유전질환이다. 영아 사망의 가장 큰 유전적 원인의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신생아 1만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 병이 진행할수록 모든 근육이 약해져 자가 호흡이 어려워지며, 가장 심각한 유형인 SMA 1형 환자는 치료받지 않으면 2세 이전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런 딱한 사정 때문에 가수 백지영이 2월 초 한국노바티스·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와 함께 2분 27초짜리 ‘희망의 빛’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백지영은 "숨 쉴 수 없어, 말할 수 없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백지영은 2월 3일 자신의 SNS에 “SMA 환우들을 위해 이 질환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뮤직비디오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백지영은 SMA를 알리는 ‘#같이숨쉬자’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희망의 빛 유튜브는 45만여 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5월 FDA로부터 승인받은 유전자치료제 노바티스의 졸겐스마. 뉴스1

2019년 5월 FDA로부터 승인받은 유전자치료제 노바티스의 졸겐스마. 뉴스1

졸겐스마는 평생 1회만 주사하는 '원샷 치료제'이자 유일한 유전자 대체 약이다. 이 약을 주사하면 SMN1 유전자의 기능적 대체본을 제공해 SMA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질환의 진행을 막는다.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약평위 통과까지 1년여 걸렸다.

지난 3월 말 4억원에 달하는 급성 림프성 백혈병 원샷 치료제 ‘킴리아주’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데 이어 이의 7배에 달하는 졸겐스마가 약평위를 통과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은 "이 질환에 쓰는 다른 약(스핀라자)을 여러 번 맞는 돈과 졸겐스마 1회 비용에 별 차이가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문종민한국SMA환우회 회장은 "약평위 통과 소식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 (워낙 고가라서) 몇 년 더 걸릴 줄 알았다고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문 회장은 "한국 건강보험의 힘을 이번에 확인했다. 현재 임상시험 진행 중인 고가의 희귀병 약이 많은데 졸겐스마가 첫 단추를 끼웠다. 다른 질환에도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졸겐스마는 미국,일본,유럽,브라질, 캐나다, 대만 등 세계 38개국에서 허가를 받았고, 1200명 넘는 환자에게 투여됐다. 건보(정부) 인정가격이 영국 28억원, 미국 25억원, 일본 19억원이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거나 낮은 선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워낙 고가의 약이라서 투여하기 전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제약회사가 일정액을 분담해야 한다. 약을 쓴 후 효과가 떨어지면 제약회사가 돈을 도로 내놔야 한다.

희귀질환 진료비나 약은 환자가 건보 가격의 10%만 부담한다. 졸겐스마 환자 부담은 건보를 적용해도 2억원에 가깝다. 다행히 환자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적용된다. 건보가 적용되는 치료비에 한해 최저 83만원, 최고 598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건보에서 부담한다. 문종민 회장은 "환자가 먼저 10%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5~6개월 지나 환급받는데, 먼저 건보 약값의 10%를 조달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아서 조달한 뒤 나중에 환급받은 돈으로 메우는, 소위 '밑장 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한제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하면 그때부터 내지 않도록 적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한다.

국내 SMA 환자는 150~200명으로 추정된다. 졸겐스마 보험 대상은 생후 24개월 미만으로 제한된다. 문 회장은 "이미 태어난 아이는 몇 명밖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본다"며 "이 약을 투여하면 신경세포가 망가지지 않아 스스로 앉거나 일어설 수 있게 되고, 기관지 절개를 안 해도 된다. 다만 부모가 SMA를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생아 선별검사에 SMA 검사를 넣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고가의 치료제는 실손보험으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해결하는 게 맞다"며 "앞으로 초고가 약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건보 적용 후 사후 효과를 검증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떨어지는 약은 건보를 축소하거나 퇴출해 재정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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