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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자유인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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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反)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비판했다. “각자가 보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1950~60년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 매카시즘 광풍을 정조준한 개념이 2022년 한국에서 소환된 것은 비극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퇴출 방법도 제시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 명징(明徵)한 자연과학적 탐구를 떠올리는 표현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실재(實在)까지 의심하는 지독한 회의(懷疑)를 거쳐 ‘기만적인 신(神)(deus mendax)’의 중세에서 벗어났다. 이성의 시대를 연 인류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낡은 시대의 감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새 대통령의 각오가 결연하다.

윤 대통령 반지성주의 비판 타당
낡은 시대의 감옥서 탈출하려면
자신에게 먼저 엄격한 잣대를…
무욕의 시인 되어 상대 경청해야

열린 광장을 거부하고 동굴에 틀어박혀서 퇴행적 확증편향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진영논리가 민주주의를 고사(枯死)시키고 있다는 상황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면 반지성주의 비판의 칼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정의를 독점하고, 현실을 무시한 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위험한 교조(敎條)로 무장한 전(前)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이 또한 교조·반지성주의가 될 것이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나는 전임자와 다르다”는 신호를 발신했다. 기득권 정치 세력과 무관한 지도자답게 청와대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호화로운 황제의 공간이 아닌 제1 공복(公僕)의 처소로 내려왔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주말에는 부인 김건희 여사와 시장·백화점에도 갔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국민의 일상에 다가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황제의 지위를 거부하고 ‘회의 주재자’를 의미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가 됐다. 대통령이라는 위압적인 호칭은 겸손하고 무욕한 ‘프레지던트’의 정체성을 살해한 19세기 후반 일본인의 무지와 오역(誤譯)의 결과다. 그런데도 우리가 구중궁궐에서 특권을 누리는 제왕적 대통령을 숭배한 것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창설’을 금지한 헌법 11조 2항을 거역한 부끄러운 역사다. 윤 대통령은 허튼 맹세를 한 전임자와는 달리 청와대 시대를 끝내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을 신속하게 내친 것도 좋은 신호다. 김씨는 “동성애는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했고, 종군 위안부 피해 배상금을 “밀린 화대(花代)”라고 했다. 사실과 다른 비합리적, 시대착오적 언설(言說)이다. 물러난 뒤에도 “언론인들은 국민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저능아로 만든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편향적인 인물이 대국민 소통의 요직에 기용된 것은 잘못됐지만 환부를 신속하게 도려낸 것은 잘한 일이다. 만일 조국을 수호한 문 정부처럼 버텼다면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비판도 힘을 잃었을 것이다.

이젠 국민 여론과 충돌할 경우 더 과감하게 물러서야 한다.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지체없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검찰 출신 중심의 비서실 인사에 대해 “폐쇄된 곳에 정보와 권력이 집중되면 썩기 마련”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비판도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내외 최고급 정보가 집중되는 직책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착각에 빠져 비판을 수용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치명적인 대통령병에 걸리는 순간 자신이 취임사에서 경계했던 반지성주의의 원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반대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 “다투되 싸우지 않는다”는 원효의 화쟁(和諍)정신을 실천하면 원수도 동지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 빈자(貧者)의 편에 서야 한다. 톨스토이가 알려준 대로 신은 언제나 그들의 초라한 얼굴로 나타난다.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밤새워 울어야 제1 공복의 자격이 있다. 함석헌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이 마음을 열면 공동체를 통합하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 취임사에서 제시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공동체 결속력 와해”라는 난제도 해결할 수 있다. 35번 외친 보편적 가치인 자유도 확대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나라”도 실현된다.

눈부신 자유의 시인 김수영(1921~68)은 빛의 전조(前兆)조차 없는 민주주의 암흑의 시대에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며 통곡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기에 앞서 자신의 위선과 악행을 고백했다. 윤 대통령은 먼저 저 무욕의 시인이 돼 마음이 통할 때까지 상대를 경청해야 한다. 반지성주의의 광기를 이겨내고 ‘자유인의 초상(肖像)’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