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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지나친 상업화, 장기 성장 가로막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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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 이후 지난 20년 이상 풍미했던 행동경제학을 마케팅에 최초로 적용한 이타마르 시몬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그간 연구를 버리기로 했다. 기존의 마케팅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절대 가치는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제품을 사용할 때 경험하게 되는 품질 또는 가치를 말한다. 이제 소비자는 기획 제조사에서 일방적으로 부각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정보와 지식에 따라 구매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중요한 진정한 가치가 있어야 이용한다. 이유는 모바일 문화의 급속한 진전 때문이다.

SNS 유료화에 팬들 불만 팽배
K팝 일군 팬 중심 철학에 역행

더구나 SNS를 중심으로 지식과 정보는 물론 콘텐트가 유통·소비되기 때문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은 콘텐트 유통 약소국이었던 한국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K팝은 미국·일본·영국의 유통 구조를 통과하지 않고 직접 세계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팬들이 갈수록 일탈을 부추기는 팝이나 소수자 정서로 도피하는 자포니즘(일본풍 사조)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절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고 이를 다른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며 선한 영향력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는 실천까지도 지향했다. 나아가 스스로 그들이 주인공이자 주체가 되라고 독려한다.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학부모들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되었다.

무엇보다 K팝은 팬에 대한 철학과 세계관이 달랐다. 서양은 아티스트 중심이었고, K팝은 철저히 팬 중심이었다. 아티스트 중심의 세계관은 그들의 생각과 메시지가 우선이었다. K팝은 팬들이 원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팬들과 나누는 소통과 교류가 중요했다. BTS처럼 팬 미팅 등 물리적 서비스만이 아니라 SNS를 통해 팬들과 깊이 교감했다.

이제 아티스트의 신화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아이돌에서 아이들로 귀환했다. 그들은 더는 우상이 아니라 팬들의 분신이자, 아바타에 가깝다. 그들의 성공은 팬의 성공이고 현실이 스토리텔링의 공간이 됐다. K팝의 소비는 노래 자체의 보편적 가치로 설명할 수 없고, 절대 가치에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K팝이 팬들을 SNS 플랫폼으로 결집해 이제 재주 넘는 곰에서, 판을 벌이는 왕서방이 될 찰나다.

하지만 최근 보여주고 있는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방식은 매우 우려스럽다. 심지어 인간적 소통의 SNS도 유료화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아티스트에게 엄청난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며, 팬들에게는 불만족을 팽배시킬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조차 돈이 개입할 영역이 따로 있다는 연구가 많다. 선의로 자연스럽게 팬들과 나눌 대화가 상품화되면 역풍이 불기 쉽다. 또 굿즈나 상품기획사업(MD)이 너무 비싼 가격에 책정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런 등골 브레이커 현상에 아티스트도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당해서는 곤란하다. 아티스트와 경영 전략이 분리되면서 팬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병역 면제 논란에서 대형 기획사들이 보여준 태도는 아티스트와 팬의 입장과 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팬 커뮤니티 플랫폼에 대형 게임업체가 진출한 뒤 성 상품화 논란이 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했다.

이제 K팝 콘텐트가 아니라 경영 전략의 시간이 왔다. K팝이 세계적으로 공유 성장한 이유는 팬 중심의 진정성 있는 철학과 그에 따른 활동이었다. 또 새롭게 바뀌는 세계적 트렌드나 화두를 능동적으로 순발력 있게 반영시켰기 때문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언급하지 않아도 경영이 K팝의 세계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서 하던 팬들에 대한 과도한 상업적 접근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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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