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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지난 여당, 이번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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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정권 교체보다 습관 교체가 더 어렵다. 지난 닷새 내내 국회팀 기자들이 “야당, 어 아니 여당” 했고, 신문사 기사 카테고리를 잘못 올리는 웃지 못할 일도 두어번 있었다. 한국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벌써 네 번째. 그래도 인간이란 변화에 적응이 필요한가 보다.

검색창에 ‘여당’을 치면 ‘여당 야당 뜻’이 맨 위 자동완성이다. 여당 뜻을 새삼 풀어보니 집권에 ‘참여하는(與)’ 정당이란 의미다. 영어로는 ‘ruling party’(통치하는 당)이자 ‘government party’(정부 측 당)로 번역된다. 반면 야당은 ‘opposition party’(반대편 당), ‘non­-government party’(미집권 당)로 여당이란 정(正)에 반(反)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자로는 들, 시골, 성 밖, 야생, 거친 것을 뜻하는 ‘야(野)’당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4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4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에서도 오랜 습관이 당의 기풍으로 자리 잡는 점은 흥미롭다. 이제 막을 내린 더불어민주당의 여당에는 그들 태생의 야성이 공존했다.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감 시즌 “우리는 원래 야당 체질”이라며 삼권 분립의 견제 분위기를 유지했던 게 긍정적 예다. 하지만 전국단위 선거 4연승에 중앙·지방·의회 권력을 모조리 거머쥐고도 “보수 기득권” “관료 통치”를 운운, 해묵은 피해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다 결국 다시 야당으로 돌아갔다. 독재의 또 다른 말인 ‘100년 집권’을 서슴없이 외친 것도 실은 뿌리 깊은 열등감이 그 발원지였나 싶다. ‘우리를 탄압한 검찰·언론을 개혁하자’는 도그마에 5년을 쏟아붓다 사상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민주당이 퇴장했다.

국민의힘이 만들 새 여당은 어떨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과거 그들이 여당일 때 기자들 사이에 “새누리당은 나빠서, 민주당은 무능해서 싫다”란 말이 공공연했다. 자신들 흠에 철저히 냉정, 단호해야 할 텐데 새 정부 첫 인선과 논란 대응 방식은 실망스럽다. 그나마 지난 13일 국민의힘 최고위가 “민주당을 비판하려면 우리부터 깨끗해야 한다”며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거취를 거론한 장면이 희망적이었다.

지난 여당은 대야 관계에 있어 투쟁적이고, 불안해했고 그래서 늘 인색했다. 베풀어준다는 뜻의 ‘여(與)’당 인걸 잊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 결속을 동시에 키우는 게 정치판 공식이라지만, 이번 여당은 무조건적 공격·비판 대신 포용·타협을 통한 생산적 결론 도출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한다. 팬덤을 정치 에너지의 일부로 인식하되, 극성 지지층 성화를 “국민의 뜻”으로 오인하는 착각 역시 반복을 피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첫 회동에서 “야당 의원들도 최대한 자주 만나고 싶다.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예산사업들도 잘 챙겨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정과 반이 만드는 합(合)의 정치가 이젠 정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