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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라임 피해자 정구집이 고발한다

文정부 실세이름 나오자 검찰 합수단 해체…제발 라임 수사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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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구집 라임 피해자 대책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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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왼쪽). 그는 법원의 보석 허가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라임 사건 특검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 그래픽=김현서 기자

라임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왼쪽). 그는 법원의 보석 허가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라임 사건 특검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 그래픽=김현서 기자

무지개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수사로 정권과의 갈등도 마다치 않던 검사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 지난 10일 취임식장에 초청받은 것은 한 개인으로서 분명 행운이었으나, ‘라임 사건 피해자 대표’라는 초청 사유(※나의 짐작이다)는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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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연루 의혹 실세 모인 취임식

공교롭게도 라임 사기를 당한 이재용 아나운서가 식전 행사를 진행했고, 둘째 딸과 그의 가족이 라임 사기 총책과 같은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인 김부겸 총리가 취임식 개회사를 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총리 인사청문회에 피해자 대표 자격으로 증인석에 올랐던 나도 같은 현장에 있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인권·공정을 강조했다. 누군가는 특별한 감동이 없는 뜬구름 잡는 단어들을 나열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내겐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 라임 사건으로 막대한 재산 피해를 보고 국회, 검찰청,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집회 현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닌 내게 자유가 스민 공기는 사치였다. 나는 자유 없는 이 사회에서 공정성을 매일 의심했다. 그래서인지 취임사에서 자유·공정 이 두 단어가 들릴 때마다 자연스레 귀가 쫑긋 했다. 정말 내게도 이제 자유와 공정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는 동안 여의도 하늘에 무지개 구름인 채운이 떴다.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는 동안 여의도 하늘에 무지개 구름인 채운이 떴다. [중앙포토]

자유의 박탈은 2019년 10월 10일에 시작됐다. 대신증권으로부터 내가 투자했던 펀드의 환매중단 통보를 받은 그날이다. 나를 포함해 수천 명이 하루아침에 권력형 금융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당시 언론은 피해 규모를 1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펀드에 가입할 때 우리는 이 상품이 초고위험의 1등급 펀드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은행예금 수준으로 안전한 5~6등급으로 '창작'된 라임 펀드 설명서를 믿고 투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펀드가 위험한 것을 알고 가입한 가입자들의 욕심과 책임이 크다"는 익명의 금융 관계자 말이 언론을 타고 돌아다녔다. 멀쩡한 대형 증권사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은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런 식으로 피해자를 조롱하는 언론 보도에 그야말로 심신이 무너져내렸다.

문재인 청와대 행정관 연루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렇듯 2차 가해가 난무하던 때 피해자들은 우리가 당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난생처음 법전을 뒤지며 ‘자본시장법’을 공부했다. 각자 지닌 증거 자료를 퍼즐 맞추듯이 하나하나 꿰맞춰 갔다. 그 과정에서 김부겸 전 총리 가족과 라임 사기 총책인 이종필 전 부사장을 위한 비밀 펀드의 존재가 확인됐다. 구속된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뿐 아니라 당시 여권인 문재인 정부 실세가 라임 사건에 연루된 정황도 드러났다.

일개 금융기관이 벌인 사기 사건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가 피해자들 사이에 퍼졌고, 튀어나오는 이름의 무게에 비춰 볼 때 사건 실체가 축소되거나 은폐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엄습했다. 이대로 가다간 돈을 한 푼도 되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피해자들이 기댈 곳은 수사기관뿐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추미애의 합수단 해체로 수사 마비

그런데 2020년 1월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수단(합수단)이 해체됐다. 지난 2013년 증권범죄 전문 수사를 위해 설치된 합수단은 금융위·국세청 등 50여 명의 전문 인력들이 검사와 한방에서 수사를 지원해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렸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각을 세우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애버렸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줄이겠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합수단이 사라진 뒤 일반 형사부로 사건이 넘어갔고, 당연히 수사 인력이 줄었다. 그 결과 수사는 거북이걸음처럼 늘어지기만 했다. 검찰에 진술하느라 방문했을 때 검사가 산더미 같은 자료에 파묻혀 있는 모습을 보고 검찰 인력 부족에 대한 걱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남부지검장 자리는 추 전 장관이 신임하는 사람이 차지했다. 라임 사건을 덮기로 했다는 풍문이 들렸다.

어떻게 이런 사기극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왜 사기의 공범들이 처벌받지 않는가? 사라진 거대한 돈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인가? 피해자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의문들이다. 권력 실세들의 개입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지난 정권에서 그 부분을 수사하지 않았으니 해답이 나올 수가 없다.

지난 3월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제대로 수사가 되려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분들이 정권을 내주기 직전에 사실상 검찰을 해체하는 것과 다름없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온갖 꼼수와 무리수를 동원해서 기어이 처리했다. 내게 피해를 준 증권사는 국내 최대 규모 대형 로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경찰도 충분히 수사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다. 검찰도 상대하기 버거운 방어일 뿐만 아니라 특히 경찰 수사를 경험한 피해자라면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라임 사건 관련 의혹 속의 힘깨나 쓸 것 같은 인물들을 검찰 아닌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나는 몹시 회의적이다.

정권 내주기 직전 민주당의 검수완박 

달러 환율은 사건 당시 기준. 해외로 나간 돈의 종착지가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달러 환율은 사건 당시 기준. 해외로 나간 돈의 종착지가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금융사의 최소한의 도덕성, 금융감독기관들의 직업적 책임감, 정치권의 양심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피해자들은 오로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지난 정권에서 검찰의 손과 발을 자르더니 새 정부 출범 직전에 아예 검찰을 식물 기관으로 만드는 입법까지 감행해버렸다. 금융 사기범들은 웃으며 박수 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검수완박 법은 라임 피해자들에게는 그저 피해자 약탈법으로 보인다.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선 검사가 대통령이 됐다. 그 대통령이 자유와 공정을 말했다.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품고 용산 집무실로 향하는 그를 지켜봤다. 범죄자들이 처벌받는 정의 없이는 공정과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라고 믿는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바로 공정

자유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사기·부패 등의 범죄가 횡행하고, 다수의 일반 국민이 그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약탈이 판을 치는데 공정과 자유가 보장될 리 없다. 경제가 발전할 수도 없다. 공정과 자유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범죄를 철저히 밝혀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불량 금융사, 그리고 어딘가에서 검찰 수사권 박탈에 미소 지으며 안도하고 있을 지난 정권 권력 실세들에게 정의의 힘을 보여주고 사라진 돈의 행방도 찾아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라임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진정으로 새 시대가 왔음을 증명할 것이다.

[김경율의 별별시각]라임 명단 수사 막으려 합수단 해체했나

정구집 라임 펀드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정권 실세 연루 의혹이 있는 이 사건을 얼마나 부실하게 처리했는지 고발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해달라고 촉구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사건의 이해를 돕는 김경율 회계사의 글을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