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관아건축과 능묘조각...우리미술사 사각지대 조명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단원 김홍도가 그린 '관서십경도'에 담긴 강선루. 퍙안도 성천의 객사인 동명관은 불타 버렸지만 이중 일부가 이 그림에 담겨 옛 관아건축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다. [사진 눌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관서십경도'에 담긴 강선루. 퍙안도 성천의 객사인 동명관은 불타 버렸지만 이중 일부가 이 그림에 담겨 옛 관아건축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다. [사진 눌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있는 장경왕후 희릉. 1562년. 사적 200호, [사진 눌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있는 장경왕후 희릉. 1562년. 사적 200호, [사진 눌와]

『한국미술사 강의 4』 낸 유홍준 #조선시대 건축, 능묘조각, 장승 등 #조선시대 불교미술 다시보기 제안 #"미술사 사각지대 밝히고 싶었다" #

최명창 묘 왼쪽 동자석. 6세기 전반. 높이 86.7cm.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다. [사진 눌와]

최명창 묘 왼쪽 동자석. 6세기 전반. 높이 86.7cm.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다. [사진 눌와]

장조 융릉 왼쪽 문신석 뒷면. 789년, 높이 217.7cm. [사진 눌와]

장조 융릉 왼쪽 문신석 뒷면. 789년, 높이 217.7cm. [사진 눌와]

"그림은 사물을 본뜬 것이니 천지간의 것 가운데 그 오묘함을 그림으로 전하지 못할 것이 없다(···)나는 화가에게 명하여 내가 그동안 거쳐왔던 관아들을 그리게 했다. " 

조선시대에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낸 한필교는 자신이 1840년부터 수 십년간 근무한 열 다섯개의 관아를 그린 화첩 『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잠자고 지내며 근무한 여러 관아의 그림'이라는 뜻)』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화첩은 조선시대 관아의 공간 구조와 조경 기법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으로, 현재 하버드대 엔칭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 화첩의 15쪽 모두가 뛰어난 기량과 조형적 성실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조선시대 관아 중 대부분이 옛 모습을 잃고 그 사진조차 남은 게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그림의 사료적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관아를 포함한 다양한 전통 건축 역시그 기능과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 미술사 분야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 교수가 최근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4』(눌와)를 펴냈다. 『한국미술사 강의』는 유 교수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나라 미술사 흐름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쓴 개론서다. 2010년 출간한 1권에선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발해를 다뤘고, 2012년 2권에서 통일신라와 고려 미술사, 2013년 3권에선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를 소개했다. 3권 이후 9년만에 출간된 4권의 주제는 독특하다. 건축부터 조선시대 왕릉과 사대부 묘에 세워진 조각상(능묘 조각)과 마을을 지킨 장승,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두루 다뤘다.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에 다양한 주제를 함께 다뤘다. 
"조선시대 미술사에서 소외된 장르를 본격적으로 다뤄봤다. 전통 건축은 건축사에서 다뤄진 건 꽤 많지만 구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미술사 측면에서 건물의 형태와 기능, 아름다움 등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다." 
능묘 조각과 돌장승을 다룬 게 눈에 띈다. 
"나름대로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왕릉은 체계적으로 다뤄진 게 꽤 있었지만, 능묘 조각을 미술사에서 다룬 건 많지 않았다. 돌장승을 통해서도 우리가 짚고 넘어야가 할 아름다운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대표적인 능묘 조각을 꼽는다면.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최명창(1466~1536) 묘의 동자석은 걸작 중 걸작이다. 이 동자석은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역동적인 몸동작에, 눈빛이 예리하다. 천의를 걸치고 손에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는데, 대단히 아름답고 조각적으로 우수하다. 조선시대 문신 박세무(1487~1554) 묘의 무인석과 문인석도 높이 2m의 대작으로 중량감 있는 형체, 엷은 미소가 잘 표현된 뛰어난 조각이다." 
'나주 불회사 돌장승'을 걸작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돌장승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이다. 사찰 장승이지만 마을 장승처럼 친근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상 그대로다. 양 볼이 불거지고 일자로 꽉 다문 입사이로 다 빠지고 남은 이 두 개가 삐져나온 할아버지, 이 빠진 채 입을 오므리고 웃는 할머니 상이다. 창녕 관룡사 돌장승도 영남지방의 대표 장승으로 입체적 표현양식이 뛰어나다.

조선시대 불교미술 다시 보기

성주 명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현진, 1637년. 높이 33.1cm. 영남대박물관 소장. [사진 눌와]

성주 명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현진, 1637년. 높이 33.1cm. 영남대박물관 소장. [사진 눌와]

유 교수는 이번 책에서 조선시대 불교미술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조선 전기의 불교미술, 산사의 미학, 조선후기 불상과 불화, 불교 공예까지 분석했다.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함)의 나라라고 단정하고 조선시대 불교미술은 미미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조선시대 불교미술은 양식상으로 고려시대 불교미술과 다르고 그 자체로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불교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해 전국에 거대한 사찰을 짓고 많은 불상과 불화를 봉안했다. 조선은 '승유억불' 아니라 '숭유존불'(崇儒尊佛) 시대로 조선 후기에 불교미술이 전성기였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은 우선 사찰 건축에 잘 드러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중건되는 사찰의 법당이 전에 없던 대규모였고, 2층, 3층, 5층의 대규모 중층 불전이 세워진 것도 이때였다. 보은 법주사 팔상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부여 무량사 극락적, 구례 화엄사 각황전 등이 그 예다.

해남 미황사 괘불제. [사진 눌와]

해남 미황사 괘불제. [사진 눌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불화로 괘불(괘불탱)을 꼽았다. 
조선 후기에 불화 도상이 훨씬 다양해지고 규모도 전에 없이 커졌다. 영산재를 비롯한 대규모 행사 때 야외 법회를 위해 거는 거대한 대형불화 괘불이 많이 제작됐다. 이것은 고려, 조선 전기에는 없던 것이고, 또 중국과 일본에도 없다. 괘불은 사찰에 보관돼 있고 항시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주목받지 못했는데 범하(범하) 스님(1947~2013)의 열성적인 노력의 결과로 그 문화유산적 가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회화사 전공인데 건축과 조각까지 두루 다뤘다.
미술사를 배우고도 정작 현장 답사를 가면 막상 능묘조각 등 모르는 미술품이 너무도 많다. 기존 미술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 전공이 아닌 각 분야사 연구 성과를 섭렵하는 게 쉽지도 않고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한국미술사의 사각지대를 밝히자는 책임감으로 했다. 이 책을 통해 한국미술사가 그 넓이와 깊이를 확대해 갔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