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루에만 전화 수십통 걸었다"…선생님들 직무만족도 반 토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갯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2020년 4월,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면서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교실이 열린 순간을 중학교 교사 A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다”면서다. 어떤 이는 ‘편안한 시간’이었을 거라 쉽게 짐작하기도 하지만, 지난 2년여는 교사들에게 생전 처음 겪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잠꾸러기 학생 전화로 깨웠다

지난 12월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곡선초등학교에서 입학을 앞둔 어린이가 담임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 12월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곡선초등학교에서 입학을 앞둔 어린이가 담임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교사들에게 ‘방역’과 ‘비대면 수업’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1교시 전에 학생들을 다 깨워 놓아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 동안 다시 잠들기 일쑤였다. 중학교 교사 B씨는 “비대면 조례를 마치자마자 교무실에 뛰어내려가서 학생에게 전화를 걸고 그래도 안 받으면 직장에 있는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며 “가끔은 컴퓨터로 다른 반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휴대폰으로는 우리 반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깨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상 첫 ‘온라인 수업’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A씨는 “교사들끼리 온라인으로 쪽지시험 치는 법, 동영상 제작하는 법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적응해 갔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연주해야 하는 리코더 대신 칼림바나 우쿨렐레가 악기의 ‘대세’가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 C씨는 “‘모둠 만들기’나 ‘짝 활동’도 못 하게 됐다. 제약 속에서 학생들이 재미있어하는 수업을 하는 게 힘들었다”며 “교내 체험실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수도권 학교들이 전면 원격수업에 들어간 지난해 7월 14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원광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수도권 학교들이 전면 원격수업에 들어간 지난해 7월 14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원광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보충수업 수요도 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 교사 D씨는 “코로나19 동안 생긴 학습결손 회복을 위해 학력이 낮은 학생들을 남겨 방과 후에 과외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며 “10명쯤 되는데 너무 많으니까 두세 번에 나눠서 가르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 때 가르친 내용은 대체로 잘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르친 내용을 또 가르쳐 가며 겨우 진도를 뺐다.

교사는 ‘우리 교실 중대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첫날인 2일 오전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생들이 100%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2만 84명으로 87일 만에 2만명대로 감소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첫날인 2일 오전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생들이 100%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2만 84명으로 87일 만에 2만명대로 감소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A씨는 “지난 2년간 담임 교사들은 ‘교실의 중대본’이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하루는 학생들이 ‘건강 상태 자가 진단’ 어플에 내용을 입력했는지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전 9시 전까지 각 학급의 데이터를 만들어 보건교사에 전달했다. ‘30명 중 2명 확진, 3명 유사증상으로 결석, 1명 가족 확진’과 같은 식이다. 대면 수업 중 확진자가 나오면 확진 학생이 집에서도 들을 수 있는 ‘블렌딩 수업’을 준비했다.

등교 시 교문, 점심시간 전 식당에서 체온을 쟀다. 손 소독·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계속 주지시키는 것도 교사들의 일이었다. 교실에는 가림막을 세우고 거리두기 스티커를 붙였다. 3월에는 학생들에게 주 2회 자가진단키트를 하게 해서 결과를 일요일·수요일 저녁마다 결과를 취합했다.

아침엔 독촉 전화, 밤엔 안내 전화

지난 3월 2일 오전 울산시 북구 달천중학교에서 보건교사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배부한 후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일 오전 울산시 북구 달천중학교에서 보건교사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배부한 후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연합뉴스

약 30명의 학생 중 누락자가 항상 생겼다. 자연스레 학생들·학부모들과 소통할 일이 늘었다. “‘어플 입력해달라’, ‘키트 사진 보내달라’며 하루에 거는 전화만 수십 통에 받는 카톡만 수백 통이었다”고 A씨는 말했다. “‘선생님, 갑자기 접속이 안 돼요’ 등 문의 사항에 답을 해 가면서 수업을 했다”고도 했다. 기기 문제로 결석한 학생에겐 대체 과제를 내줬다.

교사들은 학부모들 간의 이견도 힘들었던 점으로 꼽았다. B씨는 “자녀를 등교시키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이렇게 위험한데 급식을 먹으면 어떡하냐’는 전화가 오곤 했다”고 말했다.

수시로 바뀌는 방역 정책도 곤혹스러웠다. C씨는 “거리 두기 정책이 바뀔 때마다 학교 지침도 바뀐다. 그때마다 안내해도 헷갈리기 때문에 학부모나 학생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잦았다”고 말했다. 증상이 있는 학생을 등교시킨 학부모와 실랑이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직무 만족도 6년 만에 반 토막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꽃도매상가의 한 꽃집에 카네이션 바구니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꽃도매상가의 한 꽃집에 카네이션 바구니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속에서 교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교사들은 지금 사기가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총이 15일 스승의날을 맞아 지난 11일 발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할 것”이라고 응답한 교사는 29.9%였다. 직무 만족도는 33.5%로 6년 전(70.2%)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B씨는 “교육청에서 좋은 교육 정책을 많이 만들지만, 그 업무를 하는 건 교사다. 새로운 업무가 늘어난다고 기존 업무가 줄어들지 않는 게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교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이유에 대해 C씨는 “일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데 관리자와 학부모의 요구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노력을 인정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뿌듯하고 ‘교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