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셀럽앤카]㉛ ‘동유럽 머스크’의 고성능 전기차가 온다…‘유고’는 잊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고는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수출된 소형차로 3990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자스타바]

유고는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수출된 소형차로 3990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자스타바]

유고(Yugo). 사라진 동유럽 공산국가 유고슬라비아의 약자로 많이 기억한다.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도 ‘유고’라는 단어는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고는 유고슬라비아의 자동차 회사 자스타바(Zastava)가 미국 수출명으로 사용한 차명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에 수출…데탕트 산물 

1980년대 중반 미국과 공산국가 간 수출입 제한이 풀리면서 신 데탕트(긴장 완화) 시대의 산물로 미국에 진출했다. 자스타바는 원래 대포·총기 등을 만들던 군수회사였다. 이후 미국 포드와 이탈리아 피아트의 구형 차체 등을 기술 제휴로 들여와 조립 생산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영화 ‘다이 하드 3’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고(왼쪽)를 운전하다 테러리스트의 트럭을 추격하기 위해 벤츠(가운데)를 가로막고 훔치려는 장면. [사진 20세기폭스]

영화 ‘다이 하드 3’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고(왼쪽)를 운전하다 테러리스트의 트럭을 추격하기 위해 벤츠(가운데)를 가로막고 훔치려는 장면. [사진 20세기폭스]

미국 자동차업계의 괴짜로 통하던 맬컴 브릭클린이 신 데탕트의 상징으로 유고를 수입했다. 당시 6000~8000달러대 소형차 시장에서 399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유고를 판매했다. ‘반값’ 마케팅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형편없는 품질로 역대 최악의 자동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형편 없는 품질로 조롱당해

유고는 할리우드 영화와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놀림 대상으로 전락했다. 영화 ‘다이 하드 3’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새뮤얼 잭슨이 테러리스트를 추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테러리스트는 트럭을 타고 달아났는데 유고가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자 결국 메르세데스-벤츠를 훔쳐 타고 추격한다.

현대자동차의 첫 미국 수출 차종인 포니 엑셀.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첫 미국 수출 차종인 포니 엑셀. [사진 현대자동차]

반면 현대자동차의 첫 미국 수출 차량인 포니 엑셀(4995달러)은 유고보다 우수한 품질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판로를 뚫었다. 유고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1991~95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자동차 산업이 사실상 무너졌다.

고성능 전기차 ‘리막’ 탄생  

내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으로 분리됐다. 내전과 저품질 자동차라는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유고의 새로운 후계자가 나타났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놀림 대상인 아닌 고성능(Hyper) 전기차로 부활했다.

‘동유럽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마테 리막은 고성능 전기차 회사 ‘리막’을 세웠다. [사진 리막]

‘동유럽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마테 리막은 고성능 전기차 회사 ‘리막’을 세웠다. [사진 리막]

상전벽해의 주역은 ‘리막(Rimac)’이다. ‘동유럽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마테 리막(34)이 2009년 설립한 회사다. 자신의 이름을 사명에 쓸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88년 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난 리막은 내전을 피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랐다.

‘동유럽의 머스크’로 불려  

내전이 끝난 뒤 그와 가족은 고향이 아닌 크로아티아로 돌아갔다.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말투 때문에 고교에서 ‘왕따’를 당해 자택 차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차에서 내연기관을 뜯어내 전기차로 개조하는 기술을 익혔다. 덕분에 다양한 기능 경진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리막을 창업했다. 2011년 졸업과 동시에 ‘컨셉트 원(One)’을 내놓으며 자동차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2018년 ‘컨셉트 투(Two)’를 선보인 뒤, 이를 기반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제로백) 1초대에 달리는 ‘네베라(Nevera)’를 지난해 8월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로백 1초대 전기차 생산  

현대차그룹은 이에 앞선 2019년 약 1000억원의 투자를 통해 리막의 지분 12%를 인수했다. 그러나 독일의 포르쉐가 리막의 지분을 기존의 10%에서 24%까지 늘렸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최근 “리막이 포르쉐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현대차와 결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전략적 제휴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보도 내용을 공식 부인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