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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장관 퇴진' 투쟁했던 이정식 고용장관…새겨들을 이 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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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의 촉 : 이정식 고용부 장관의 딜레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임기를 시작했다.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취임사다.

이 장관은 "전국의 근로자와 경영자, 구직자 여러분"이라며 노동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늘 입에 달고 있던 '노동자'라는 호칭이 '근로자'로 대체됐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언급했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를 설명할 때는 어김없이 '노동시장'을 전제로 깔았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때는 자유 시장 경제에 기반을 둔고용노동정책 기조를 더 확연하게 드러냈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경직적인 법·제도나 관행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1970년대 공장 노동에 근간을 둔 노동법의 체계를 확 바꿔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를 강조했다. 힘의 논리에 의한 노사 관계에 경고를 한 셈이다. 유연 근무를 활성화하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말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장관은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이자 조정자"라는 역할론도 피력했다. 지난 정부에서 심판자로 자리매김했던 고용부의 역할 변화를 시사한 대목이자 자율과 자치를 우선시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2016년 10월 16일 이정식 당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던 이기권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당시 ″성과연봉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제공]

2016년 10월 16일 이정식 당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던 이기권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의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당시 ″성과연봉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제공]

그의 취임사 내용은 30여 년 노동운동을 하며 주장했던 내용과 판이하다. "국회의 후보자 청문회 때 지적됐던 '자기부정'이 국무위원이 되면서 확신으로 바뀐 듯하다"(모 경제학자)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고용부 안팎에선 내심 불안해하는 기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 교수는 "자기부정은 이 장관의 직무 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청문회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호평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소신을 바꾸는 것은 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일관성에 의구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 장관은 청문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대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제로는 한국노총 전·현직 위원장조차 혹평한 정책이다.

국무위원은 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한데 이 장관의 경우 그가 30여 년동안 가졌던 소신과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재임 기간 내내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6년 4월 16일 국회 정문에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하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당시 그는 한국노총 사무처장이었다. 당시 중앙선데이의 대담에선 ″최저임금 1만원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영세 업체는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제공]

2016년 4월 16일 국회 정문에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하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당시 그는 한국노총 사무처장이었다. 당시 중앙선데이의 대담에선 ″최저임금 1만원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영세 업체는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제공]

그의 조직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회피 전략을 쓰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예컨대 다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책 방향을 확실하게 드러내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들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떠넘기거나, 입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여론조성 작업과 같은 정부의 능동적 역할 수행 대신 수동적 자세를 취하며 국회를 탓하는 식이다. 국정과제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사안에도 예외 없이 이런 식의 소극 행정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장관 혼자 (행정을) 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잘해야죠"라고 말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뒤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이 장관을 둘러싼 불안감이 함축적으로 녹아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서울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좋은 정책이라 해도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세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간 전문가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이 장관에게 필요한 건 국무위원으로서의 정책 소신을 수정하고 가다듬는 일 아닐까 싶다. 어째서 임금체계 개편이 국정과제가 됐는지,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근로시간 유연화가 국정과제로 선정됐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왜 자유와 시장을 강조하고 있는지 등 각종 국정과제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적 소신과 국가 정책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국가의 정책 추진은 그런 일관성에 기초할 때 힘을 받는다.

새겨볼 만한 사례. 문재인 정부 첫해 고용부는 한국노총 출신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맡았다. 후임 이재갑 전 장관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청와대로부터 이런 당부를 들었다고 한다. "무너진 고용노동부 조직부터 재건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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